V-2 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912년 3월 23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12년 3월 23일, 인류 우주 개발사의 가장 거대하고도 논쟁적인 인물인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이 독일 비르시츠에서 태어났다. 로켓 공학에 투신했으며, 결국 인류를 달에 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천재 과학자로 기록된다. 그러나 그의 업적 이면에는 나치 부역과 무기 개발이라는 지울 수 없는 그림자가 공존한다.
브라운의 초기 경력은 독일 육군 병기국에서 시작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세계 최초의 탄도 미사일인 V-2 로켓을 개발했다. 이 로켓은 런던 등 연합군 도시를 타격하는 데 쓰였으며, 제작 과정에서 강제 수용소 수감자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전쟁 종료 후, 브라운은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을 통해 미국으로 압송됐고, 이후 그의 천재성은 미국의 우주 개발 역량으로 흡수됐다.
1958년 NASA가 설립되자 브라운은 마셜 우주 비행 센터의 초대 소장을 맡아 미국의 우주 탐사를 진두지휘했다.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로켓인 새턴 V(Saturn V) 개발을 주도했다. 총 3단으로 구성된 이 거대 로켓은 지구 중력을 이겨내고 아폴로 우주선을 달 궤도까지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1969년 7월, 새턴 V 로켓에 실린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그가 개발한 다단 로켓 기술과 액체 연료 엔진 시스템은 현대 로켓 공학의 표준이 됐다.
브라운은 과학자의 기술적 야망이 정치적 목적과 결합했을 때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상징한다. 그는 미국에서 '우주 개발의 영웅'으로 칭송받았으나, 동시에 '나치 전범'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베르너 폰 브라운은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지구라는 요람을 벗어나 우주로 나아갈 수 있는 물리적 통로를 개척한 인물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를 통해 과학 기술의 진보와 그에 따르는 윤리적 책임을 동시에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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