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도 모로 伊 총리 피랍, 이탈리아 '비상사태' [김정한의 역사&오늘]
1978년 3월 16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78년 3월 16일, 평온하던 로마의 아침은 불과 몇 분 만에 비명과 총성으로 뒤덮였다. 이탈리아의 거물 정치인 알도 모로(Aldo Moro) 기독교민주당 당수가 극좌 테러 조직에 납치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은 로마 파니 가에서 참혹한 총격전과 함께 시작됐다. 극좌 테러 조직 '붉은 여단(Brigate Rosse)'은 모로를 납치한 후 자신들의 은신처에 가뒀다. 이들은 수감된 동료 테러리스트들과의 맞교환을 정부에 요구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내각은 "테러와의 타협은 국가의 패배"라며 강경한 거부 의사를 고수했다. 결국 붉은 여단은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자, 5월 9일 모로에게 11발의 총탄을 퍼부어 살해했다. 납치 55일째 되는 날, 로마 도심 미켈란젤로 가에 주차된 차량 트렁크에서 모로의 시신이 발견됐다.
모로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미켈란젤로 가는 기독교민주당 본부와 이탈리아 공산당 본부의 중간 지점이었다. 이는 모로가 평생을 바쳐 추진했던 '역사적 타협'(기독교민주당과 공산당의 연합)에 대한 테러 집단의 조롱이자 완전한 부정으로 풀이된다.
발견 당시 모로는 담요에 덮인 채 누워 있었으며, 그의 옷차림은 납치 당일 입었던 정장 그대로였다. 55일간의 고초를 대변하듯 수척해진 모습은 이탈리아 전역을 슬픔과 분노에 빠뜨렸다. 그의 죽음은 이탈리아 현대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의 사망으로 중도와 좌파를 아우르려던 '역사적 타협'은 동력을 잃고 표류하게 됐다.
이탈리아 정치는 극심한 보수화와 혼란의 소용돌이로 치달았다. 국가는 지도자를, 가족은 가장을 잃었다. 대낮 도심에서 벌어진 전직 총리의 납치와 살해라는 비현실적인 참극은 '납의 시대'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어두운 단면을 전 세계에 드러냈다.
acene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