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한의 역사 크루즈] 변화의 시대와 이중적 가치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조선시대는 외국에 관광을 갈 수 없었습니다. 허락 없이 국경을 넘으면 사형입니다. 허락을 받으면 되지 않을까? 허락을 받을 건수도 없었습니다. 유일한 허락은 정부의 사신으로 발령을 받아 나가는 경우입니다. '북학의'를 쓴 박제가는 사신으로 발령을 받아 중국에 갔고,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은 8촌 형인 박명원의 수행군관 자격으로 따라갔습니다.

이 방법은 엄연히 위장, 불법이지만, 당시에는 이런 정도는 용납이 됐습니다. 중국 구경을 하고 싶어서 돈을 내고 위장 수행원이 되어서 관광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방법이 일반인에게는 유일한 해외여행의 기회였습니다.

19세기 중후반에 이우준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1841년 그의 외조카가 북경에 가는 사신의 서장관이 됐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서 이우준에게 함께 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우준은 이 황금 기회를 놓칠세라 사신단에 끼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우준은 운이 좋았는지 경극, 마술 공연도 보고, 꽤 여유 있게 북경의 명소 곳곳을 둘러봅니다. 그가 남긴 기행문이 '몽유연행록'입니다. 꿈같이 유람해 본 북경 여행이란 책인데, 이우준의 호가 몽유자라 몽유자의 중국 여행기란 뜻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다른 연행록에 비해 묘사도 사실적이고 내용도 풍성합니다.

중국 허베이성의 서커스 팀이 하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 AFP=뉴스1 ⓒ News1 최종일 기자

마술과 서커스 공연 묘사입니다.

한 자루의 장검을 가져다 놓으니 두어 척 길이에 광채가 번쩍였다. 바로 그의 입을 크게 벌리고 삼켜서 점차 아래로 내려서 손잡이가 붙은 곳까지 내려가서 멈췄다. 배의 창자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야 급하게 뽑아내니 장검 위에 열기가 등등하여 관람하는 사람들이 숨조차 쉬지 못할 정도였다.

제가 1994년인가 북경에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일정에 서커스 관람이 있었습니다. 가이드가 요즘 서커스는 좀 시시하다, 자기가 어렸을 때는 입에 칼 집어넣는 그런 섬뜩한 게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건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도 이런 칼 쇼는 못 봤는데, 청나라 때부터 인기 있는 쇼였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경극 관람 묘사입니다.

이야기 흐름이 바뀌는 곳에 이르면 배우가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장막 안에서도 모두 노랫소리로 응해서 화답하고 관현을 함께 연주하니 그 소리가 매우 맑고 아름다워서 들을 만했다. 여자는 모두 남자가 분장한 것인데 소리와 모습이 여자 같았다. 소품도 뛰어났다. 조조가 궁전에 있을 때는 보탑이 세워져 있고, 제갈량이 설전을 벌일 때는 앉은 의자가 벌려 있었다. 날아온 화살이 배에 가득한데 북을 치며 진격하였다가 돌아오는 것은 공명이 화살을 빌어오는 장면이다.

이분과 일행들이 중국어는 몰라서 대사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삼국지', '수호지 장면은 다 알아보고 뿌듯해하는 묘사가 나옵니다. 19세기면 우리나라 고대소설도 유행할 때라, '삼국지'는 말할 것도 없고, '수호지'도 널리 읽혔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중국 여행에서 문화충격을 많이 받습니다. 19세기면 조선도 시장에 가면 사람이 인산인해고, 화폐가 일상에서 쓰일 정도로 상업도 많이 발달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농본사상 숭상은 여전합니다. 아니 상업이 발달하니까 배금사상, 물질주의에 대한 멸시, 도시인들이 도시 문명 속에서 살면서 도시 문명을 비관하고, 전원생활 예찬만 하는 식의 이중적 가치관이 더 심해집니다.

박제가, 박지원의 현실적 합리적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도 많이 늘었지만, 조선 유학자의 중국, 일본 여행기를 보면 대부분이 이중적 가치관을 보입니다. 열심히 시장, 공연 구경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는 놀고먹기만 좋아하니 곧 망할 거야."

20세기 초에 맨해튼에 간 조선 사람들은 엄청난 현대문명에 감탄하면서도 길에서 남녀가 손잡고 다니고 껴안고 하는 광경을 보고 이 나라는 도덕이 타락해서 곧 망한다거나 우리가 더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이우준은 이 당시 기준으로 꽉 막힌 사람은 아닌 편에 속합니다. 열심히 유람하고, 즐기고, 인간 삶의 기준이 너무 빡빡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자기가 살아온 환경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지요. 그가 본 물질문명, 소비생활에 대한 평가를 모아 보겠습니다.

경극 공연 즐겁게 하시고 남긴 공연 문화에 대한 평입니다.

온갖 잡희는 우리나라의 광대와 같은데 재주가 뛰어나 비교할 수가 없다. 정월부터 시작해서 3월이 가서야 끝나는데 지방이나 시장이 있는 도회처에는 모두 공연장이 있다. 남녀가 몰려다니며 돈과 재물을 쓰니 진실로 고질적 병폐라고 하겠다. 그러나 공연에서 다루는 이야기가 권선징악을 가르치는 효과는 충분하다.

돈을 쓴다. 공연을 보는 건 낭비다. 돈이 도는 19세기에도 이런 관념이 습관처럼 자리 잡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긴 뭐 미국 영국보다 더 자본주의 국가라는 지금도 그러니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술안주는 볶은 달걀과 돼지고기 같은 것들인데, 생파가 매우 통통했고, 백산사는 크기가 호두만 했다. 안주 역시 값을 받는데, 마늘 하나 파 하나도 공짜로 내놓지 않는다.

이 글에는 굳이 비판을 달지는 않았지만 놀람이자 은근한 비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요식업 하는 분들이 제일 힘들어하는 게 반찬은 공짜, 무한리필 관념이죠. 그렇게 안 하면 당장 손님 끊어집니다. 반찬 공짜가 후한 인심, 미덕일까? 공짜는 범죄라는 관념이 잘못된 것일까? 지금도 그런데 19세기 유학자분에게 뭘 더 바라겠습니까. 그래도 역시 중국인들은 돈밖에 모른다. 인심이 야박하다. 이런 코멘트를 달지 않는 것만도 이분이 당대인 수준에서는 포용력이 넓은 것을 보여줍니다.

상업을 천시하는 조선 기준에서 봤을 때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대개 중국의 북쪽 풍속에서는 전적으로 장사를 위주로 삼아, 벼슬길에 나갔다가 바로 저자의 점포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므로 저자의 사람과 재상이 동등하게 예우하기도 하고, 품계가 높은 조정의 관료 역시 왕왕 저자에 나오기도 한다.

보통은 이런 기술을 하면 도가 땅에 떨어졌다, 사대부가 사라졌다는 식으로 비판이 나와야 정상인데, 몽유자는 설명만 하고 비판하는 코멘트는 달지 않았습니다. 좀 의외였습니다. 저자는 부와 물질문명에 대해서 비판적이기도 하지만, 또 이런 부분에서는 발전적 지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4월 25일부터 6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시대 통신사 특별전에서 관람객이 유물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18, 19세기 우리나라 사대부 정서를 보면 사치, 오락 이런 것에는 굉장한 거부감을 보이고, 아이들이 세뱃돈을 요구하면 애들이 돈맛을 알아 말세라고 하고, 인형, 피규어는 말할 것도 없고, 일상에 필요한 생필품을 사는 것도 사치라고 비난하면서도 사대부도 돈을 벌어야 한다, 사대부가 장사를 하는 게 뭐가 나쁘냐는 생각도 넓게 퍼져갑니다.

사대부의 상업관이 바뀌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18세기부터 양반이 늘어나고, 몰락하는 양반도 많아지면서 사대부들이 이익을 탐하는 것, 상업에 손을 대는 것에 대해 그게 어때서, 양반의 품위를 지키려면, 효도를 하려면, 딸 아들 시집·장가보내 대를 잇고 제사를 지내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게 왜 나쁘냐 이런 정서가 상당히 확산합니다. 자기 삶에 절실하게 와 닿는 부분이기 때문이죠.

반면에 상위 양반층, 왕 이하 아쉬운 게 없는 상류층들은 이런 사대부들의 변심에 혀를 찹니다. '몽유연행록' 50년이 지난 후에 고종이 친히 반포한 교육조서가 있습니다. 이미 개항을 하고 선진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물밀듯이 밀려들어 오는 상황에서도 공부는 도를 위해서 해야 한다. 선비는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꽉 막힌 사람들은 빼고, '몽유연행록'을 보면 그래도 변화를 추구하는 분들도 이중적 가치관에 휩싸여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자기가 절실한 부분에서는 긍정하고, 경극·마술 공연같이 우리의 삶과 거리가 있는 분야에서는 전통 가치관을 강요하고.

해석하기에 따라 전통적인 농본사상에서 발전하는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고, 내로남불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내로남불, 이중가치는 비판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게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도 다르지 않다는 점도 함께 반성하고 긴장해야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과도기를 겪고 있습니다. 사회는 분열되고, 모두가 이중잣대로 상대를 죽일 듯이 미워하고 비난합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이지만 그렇기에 이기심을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법과 사회와 관습과 윤리, 교육은 그 조절을 위해 존재하는데, 시대가 바뀌면 이 기준도 바뀌어야 하죠. 사회는 구성원이 다양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새로운 욕망과 전통가치의 취사선택, 받아들이는 것과 고수하는 것에 선택적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게 사회의 위기이고, 위기가 기회라는 건 이런 때에 먼저 바르게 선택하고 정비하는 개인, 집단이 성장하고 역전을 이루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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