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왕실, 나폴레옹 피해 브라질로 피신 [김정한의 역사&오늘]
1807년 11월 27일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07년 11월 27일, 포르투갈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피해 유럽을 떠나 브라질로 탈출한 것이었다.
섭정왕 돈 주앙(후일 주앙 6세)이 이끄는 브라간사 왕실 전체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대를 피해 수도 리스본을 버리고 신대륙 식민지인 브라질로 피신했다. 이는 유럽 왕실이 전례 없이 대규모로 대륙을 넘어 피난한 사건이었다.
당시 유럽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나폴레옹은 숙적인 영국을 고립시키기 위해 모든 유럽 국가에 대륙 봉쇄령 준수를 강요했다. 전통적으로 영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포르투갈은 이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했다. 이에 나폴레옹은 스페인과 동맹을 맺고 포르투갈 침공을 명령했다.
침공군을 이끈 프랑스 장군 주노는 11월 말 리스본 근교까지 진격했다. 돈 주앙 섭정왕은 나폴레옹에 맞설 군사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영국의 지원 아래 왕실 피신을 결정했다. 왕실 일가와 수천 명의 귀족, 고위 관리들, 그리고 국가의 중요 기록물, 보물 등을 싣고 약 15척의 선박으로 구성된 대규모 함대가 리스본 항구를 떠났다.
이들의 망명지는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였다. 위험한 항해 끝에 함대는 1808년 1월 브라질에 도착했다. 이 사건은 브라질의 운명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왕실의 도착으로 리우데자네이루는 제국의 중심지로 격상됐고, 포르투갈의 수도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브라질은 무역이 개방되고, 행정 및 문화 기관이 설립되는 등 급격한 발전을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이 1807년의 대탈출은 포르투갈 본국이 프랑스 점령을 겪는 동안 브라질이 사실상 독립 국가에 가까운 지위를 누리는 계기가 됐다. 이는 훗날 브라질이 포르투갈 왕실 일원인 돈 페드루(주앙 6세의 아들)에 의해 독립을 선언하는 기반이 됐다. 브라질은 식민지 상태를 넘어 새로운 제국의 심장으로 거듭나는 역사의 변곡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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