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사람'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840년 11월 12일

오귀스트 로댕 (출처: 나다르,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40년 11월 12일 프랑수아 오귀스트 르네 로댕이 태어났다. 이 아이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근대 조각의 시조로 불리는 거장이 됐다.

하급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로댕은 14세에 국립 공예 실기학교에 입학하며 기초를 다진 후, 수년간 건축 장식물을 만드는 장인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 실무 경험은 훗날 관학파의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그만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로댕의 예술적 전환점은 1875년 이탈리아 여행이었다.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깊이 감명을 받은 그는 고전주의 양식의 영감을 받아 사실적인 표현을 심화했다.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후 1878년 파리 살롱에 출품한 '청동 시대'는 살아있는 모델을 복제했다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생생한 사실성을 보여주며 로댕에게 명성을 안겼다.

이후 파리 장식 미술관의 출입문 제작을 의뢰받아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 제작에 착수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미완성으로 남았지만, 그의 수많은 대표작의 모태가 됐다. '생각하는 사람'과 '키스' 등 유명 작품들이 이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인물상에서 발전된 것이다.

로댕의 주요 작품으로는 백년전쟁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칼레의 시민'과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표현한 '발자크 기념상' 등이 있다. 그는 18세기 이래 건축 장식물에 불과했던 조각에 생명과 감정, 즉 생명의 약동을 불어넣어 조각의 예술적 자율성을 확립했다.

로댕은 예리한 사실 기법을 통해 인간의 모든 감정을 담아내며 미켈란젤로 이후 최대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근대 조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16년 그의 작품과 재산을 국가에 기증한다는 조건으로 국립 로댕 미술관이 발족됐고, 이듬해인 1917년 11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예술은 오늘날까지도 시대를 초월하는 영감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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