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트마 간디, 비폭력 무저항 운동 시작 [김정한의 역사&오늘]

1906년 9월 11일

마하트마 간디. (출처: Unknown author, 1940년대 말,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06년 9월 11일, 남아프리카 트란스발에서 한 인도인 젊은 변호사 마하트마 간디가 전 세계 역사를 바꿀 평화 혁명의 서막을 올렸다.

이날 요하네스버그의 한 극장에서 수많은 인도인이 모인 가운데, 간디는 영국 식민 정부가 통과시킨 '아시아인 등록법'(Black Act)에 저항하기 위한 새로운 투쟁 방식을 선언했다. 이 법은 모든 인도인이 지문을 포함한 신분증을 항시 소지하도록 강제하는 인종차별적 조치였다.

간디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대신, 진실의 힘과 영혼의 힘에 기반한 비폭력 무저항 운동, 즉 '사티아그라하'(Satyagraha)를 제안했다. 그는 어떠한 폭력도 사용하지 않고, 불의한 법을 준수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고난과 처벌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상대방의 양심을 움직이고 변화를 이끌어낼 것을 촉구했다.

이 제안은 참석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이들은 신성한 맹세와 함께 어떠한 위협이나 고통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울 것을 결의했다. 이 맹세는 영혼의 정화와 진정한 자유를 향한 종교적 서원이었다. 간디는 이 운동이 단순한 정치적 승리가 아니라, 도덕적 우위를 통해 영혼의 고양을 이루는 길이라 믿었다.

간디와 수많은 인도인은 신분증 소지를 거부했고, 이로 인해 수감, 폭행, 재산 몰수 등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흔들림 없는 평화적 저항은 오히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남아공 정부를 압박했다. 7년여에 걸친 투쟁 끝에, 남아공 정부는 결국 이 법안을 철회하고 인도인들의 권리를 일부 인정했다.

간디가 시작한 사티아그라하는 훗날 인도의 독립 운동은 물론, 미국의 민권 운동(마틴 루터 킹 주니어),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넬슨 만델라) 등 전 세계 비폭력 저항 운동의 상징이자 영감의 원천이 됐다. 비폭력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 역사적 순간이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