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칼럼] '케데헌 신드롬'에서 얻는 교훈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이재영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K팝 소재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 이른바 '케데헌 신드롬'이 예사롭지 않다. OST '골든'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차트인 '핫 100'에서 1위를 차지했고, 나머지 OST들도 상위권을 장악했다. 영국 팝 차트에서도 여러 주 연속 1위를 차지해 세계 양대 음악시장을 석권했다. OST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을 넘어섰다는 평가다.

넷플릭스로 공개된 '케데헌'은 OTT 글로벌 영화 시청 순위도 실사영화까지 통틀어 역대 1위를 차지했다. '오징어게임'에 이어 다시 한류의 '뜨거운 맛'을 본 넷플릭스는 서둘러 속편을 준비한다고 한다.

기대를 크게 뛰어넘는 '케데헌 신드롬'에 한국 사회도 놀라고 있다. 해외 관광객이 몰려와서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득 메우고, 박물관 소장 유물을 모방한 '뮷즈'(뮤지엄+굿즈)들이 출시되자마자 품절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진다. '케데헌'에 배경으로 나온 남산 타워와 낙산공원 등에는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그동안 BTS 등 K팝 아이돌, '기생충'과 '오징어게임' 등 한류 콘텐츠의 글로벌 인기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케데헌 신드롬'에는 이전과 다른 파장이 느껴진다.

'케데헌'에 세계가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문가들과 언론이 다양한 설명을 내놓지만, 필자가 가장 주목하는 건 '케데헌'이 그동안 우리가 관성적으로 바라보던 한국 문화를 다른 시각으로 포착했다는 점이다. 즉 우리는 삶의 일부로 익숙하게 받아들여도 외국인들은 별 관심이 없으리라 여겼던 우리 전통문화에서 세련된 감각과 글로벌한 가치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익숙한 감각을 비틀어서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한 데는 감독 포함 주요 제작진으로 참여한 교포들의 공이 절대적으로 크다. 교포들은 전통과 현대, 지역성과 세계성을 연결해 세계의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가장 한국적인 소재에서 가장 글로벌한 공감대를 찾아낼 수 있었던 건 교포들이 가진 독특한 디아스포라적 감각 덕분이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메기 강 감독(왼쪽)과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8월 21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 News1 김도우 기자
글로벌 매력 국가가 된 한국

교포들이 한국 문화 세계화를 이끄는 주역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번 '케데헌 신드롬'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와 교훈을 남겨준다. 그동안 미주 교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배타적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중국 교포에 대해서도 부정적 선입견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념 대립이 심했던 시기에 일본 교포들이 겪었던 고초는 다 말하기도 힘들다.

그렇게 된 책임 소재를 지금에 와서 따지는 건 무의미하고, 중요한 건 한국이 이제 해외의 교포를 개방적으로 포용하고 미래를 함께 만들어갈 소중한 인재로 받아들일 만큼 크고 성숙한 나라가 됐다는 점이다. 교포뿐만 아니라 외국의 인재들에게도 개방적으로 문을 열고 그들을 포용할 수 있을 만큼 한국은 어느새 글로벌한 매력이 있는 나라가 됐다. '케데헌 신드롬'은 그렇게 한국이 글로벌 매력 국가가 됐음을 확인해 주는 분기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국 인재를 대하는 한국의 태도는 여전히 답답하다. 각 대학은 줄어드는 내국인 입학생을 대체하는 등록금 벌이의 대상으로 여기고, 정부나 사회 일각에서는 편하게 부릴 수 있는 저임금 노동력으로만 생각한다. K팝과 한류의 매력에 심취해 찾아오는 각국 청년들을 뜨내기 일회성 관광객처럼 대접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찾아오는 청년들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한국에서 공부하고 정착할 생각까지 하는데, 우리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안착시킬 준비가 아직 부족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 인프라와 행정 시스템, 모든 나라가 부러워하는 안전한 치안, 게다가 매력적인 문화까지 갖췄지만, 개방이 우리의 미래라는 인식의 전환은 아직 부족하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근정전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고 있다. 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개방적 시스템으로 글로벌 인재 유입해야

남한 인구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스페인에 이어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가 됐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같은 강대국들 틈에서 이뤄낸 성과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국내 인재의 해외 진출을 장려하고 해외 인재를 개방적으로 포용한 게 중요한 동력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계몽사상'과 예술적 번영 같은 문화적 매력이 있었다.

'케데헌 신드롬'이 보여주듯 지금 한국은 당시 네덜란드보다 해외 인재를 포용하기에 더 좋은 조건이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이 당시 네덜란드보다 더 개방적인 나라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리스크로 인해 글로벌 인재들이 탈출하는데, 이들이 한국에 들어오도록 유도할 길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인구가 줄어든다고 한탄하고, AI와 첨단 기술 인재가 부족하다고 하소연만 할 게 아니라 이런 글로벌 인재들이 한국에 와서 공부하고 창업하도록 개방적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케데헌'이 크게 성공했어도 이익은 넷플릭스가 다 챙겼는데 우리가 좋을 게 뭐냐는 말은 제발 하지 말자. '케데헌 신드롬'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게 정말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