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니스 역사의 위대한 서막을 알린 첫 서브" [역사&오늘]

1877년 7월 9일, 제1회 윔블던 선수권 대회 개막

제1회 윔블던 선수권 대회를 묘사한 삽화. (출처: H.W.P.Illustrated Sporting and Dramatic News, 1877,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77년 7월 9일, 역사적인 제1회 윔블던 선수권 대회의 막이 올랐다. 오늘날 세계 최고 권위의 테니스 대회의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당시 '올 잉글랜드 크로케 클럽'은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주력 종목인 크로케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클럽 운영 자금 마련이 시급했다. 이때 클럽의 규칙 위원회 멤버였던 줄리안 마셜과 헨리 존스가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다. 바로 1870년대 중반부터 영국 상류층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던 '론(잔디) 테니스'에 주목한 것이다.

제1회 윔블던 선수권 대회는 남자 단식 경기만을 진행했다. 총 22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대회를 위해 클럽은 '론 테니스'의 규칙을 제정했다. 당시 메이저 월터 클롭턴 윙필드가 고안한 초기 테니스 규칙을 바탕으로, 코트의 크기, 네트의 높이, 서브 방식 등을 표준화했다. 또한 공의 재질과 크기 등도 규정해 경기의 공정성을 높였다.

대회는 비로 인해 몇 차례 연기되기도 하며 진행됐다. 관중은 주로 클럽 회원들과 지역 주민들이었다. 결승전은 7월 19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비로 인해 하루 연기돼 7월 20일에 치러졌다. 결승에는 스펜서 고어와 윌리엄 마샬이 올랐다.

고어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강력한 서브와 네트 근처에서의 발리 플레이를 선보이며 마샬을 3-0으로 꺾고 초대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그는 12기니의 상금과 25파운드 상당의 은 도금 트로피를 받았다. 결승전을 관람한 약 200명의 관중은 테니스라는 새로운 스포츠가 가진 흥미와 박진감에 매료됐다.

첫 경기는 오늘날 전 세계가 주목하는 웅장한 윔블던 대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했다. 하지만 이 작은 시작이 있었기에 테니스는 전 세계적인 스포츠로 성장할 수 있었다. 윔블던은 '테니스의 성지'이자 전통과 명예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날의 첫 서브는 테니스 역사의 위대한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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