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혁명의 불꽃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다 [역사&오늘]
6월 20일, 테니스 코트의 서약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789년 6월 20일, 프랑스 혁명의 불길을 지핀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인 '테니스 코트의 서약'(Serment du Jeu de Paume)이 베르사유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은 프랑스 왕정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민중 주권의 강력한 선언이 됐다.
당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시달리던 루이 16세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614년 이후 유명무실했던 삼부회를 소집했다. 삼부회는 성직자(제1신분), 귀족(제2신분), 그리고 평민(제3신분) 대표로 구성됐는데, 투표 방식을 두고 이견을 표출했다.
특권층인 제1신분과 제2신분은 신분별 투표를 주장했고, 반면에 상대적으로 수가 많았던 제3신분은 머릿수 투표를 주장했다. 교착 상태가 이어지던 중 6월 17일 제3신분 대표들은 스스로를 국민의회로 선언하며 프랑스 국민의 유일한 대표임을 천명했다. 이는 왕권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었다. 그러자 루이 16세는 국민의회가 모이기로 한 '살 드 제타'(Salle des États) 회의장을 폐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제3신분 대표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6월 20일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근처 실내 테니스 코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약 577명의 대표들은 역사적인 맹세를 했다. 이들은 "헌법을 제정하고 공고히 할 때까지 결코 해산하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모일 것"을 엄숙히 서약했다. 당시 대표단의 의장이었던 장-실뱅 바이이가 이 서약을 낭독했고, 모든 대표가 이에 동의했다.
테니스 코트의 서약은 프랑스 국민이 더 이상 왕의 명령에만 복종하지 않고, 스스로의 주권을 행사하여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서약은 국민의 동의에 기반한 새로운 정부 체제 수립을 향한 강력한 첫걸음이었다. 또한 프랑스 혁명이라는 거대한 물결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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