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 울려 퍼진 뜨거운 함성 "대한 독립 만세" [역사&오늘]

3월 1일, 3·1 운동 발생

3·1 운동. (출처: Bureau d'information coréen(1919),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19년 3월 1일, 일제강점기에 한반도 전역에서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한국 역사의 암흑기에 일어난 3·1 운동은 꺼지지 않은 민족혼을 일깨우고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를 마련했다.

일제는 1910년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이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강압적인 식민 통치를 자행해 한국인들의 민족적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가운데 1919년 1월 고종 황제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일제가 독살한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민족적 감정이 더욱 격앙됐다.

당시 국내외에선 독립운동을 펼쳐지고 있었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가 한국인들에게도 독립의 당위성을 각성시켰다.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서울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탑골공원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는 곧 전국 각지로 확산했다. 3·1 운동은 비폭력 평화 시위로 전개됐다. 하지만 일제는 3·1 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수많은 사람이 체포되고 고문당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유관순 열서도 그렇게 희생된 사람 중 한 명이다.

3·1 운동은 한국인들이 민족의 독립을 이루겠다는 강한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를 통해 한국인들은 신분, 종교, 지역 등의 차이를 넘어 하나로 뭉쳐 독립을 염원했다. 이는 민족 통합의 중요한 계기가 됐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으로 이어졌다.

3·1 운동은 중국의 5·4 운동과 인도의 간디의 비폭력 운동에도 영향을 줬다. 무엇보다도 3·1 운동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3·1 운동은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정체성의 근간을 형성한 저항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