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저항한 젊은 영웅들의 용감한 외침 [역사&오늘]

2월 22일, 나치 독일의 백장미단 단원들 처형

백장미단 사건 기념물 (출처: Gryffindor(200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43년 2월 22일, 나치 독일의 심장부 뮌헨에서 젊은 저항 단체 '백장미단'의 핵심 단원들이 처형당했다.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당원, 쿠르트 후버 뮌헨 대학교 철학과 교수 등이 참여해 서슬 퍼런 나치 정권에 맞서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백장미단은 뮌헨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지하 저항 조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 경험을 통해 전쟁의 비극성을 깨달은 한스 숄과 조피 숄 남매가 주축이 되어 결성했다.

남매는 나치 정권의 전체주의적 통치와 전쟁 수행에 대한 비판 의식을 공유하는 학생들이 모아 백장미단의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히틀러의 만행과 나치 정권의 억압과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유인물을 제작해 배포하며 독일 시민들을 각성시키고 불의에 맞선 저항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다.

1943년 2월 18일, 숄 남매는 대학교 내부에 유인물을 살포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됐다. 이틀 후 열린 재판에서 이들은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당일 저녁 곧바로 처형이 집행됐다. 나치 지도부는 백장미단의 활동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해 속전속결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백장미단의 다른 단원들 역시 체포되어 처형되거나 수감됐다. 하지만 이들의 용감한 저항은 독일 사회와 유럽 전역에 알려져 큰 반향을 일으켰고, 나치 정권에 대한 저항 운동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또한 히틀러의 광기에 사로잡힌 독일 내부에도 양심이 살아있음을 알렸다.

백장미단 단원들의 희생은 자유와 정의를 향한 용기 있는 외침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있다. 이들의 용기와 헌신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정의를 수호하고자 희망을 잃지 않고 저항했던 젊은 영웅들의 이야기로 기억되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