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세상의 높이를 바꾼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본 석양의 에펠탑 /사진=조성관 작가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지금 대한민국은 '2030 세계엑스포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유치 후보 도시는 부산. 2030 세계엑스포 유치를 놓고 부산과 경합을 벌이는 도시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오일 머니를 앞세워 거칠게 나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맞서 민간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 글로벌 기업의 CEO들이 유치전의 최전선에서 움직인다.

세계엑스포를 다른 말로 만국박람회라고 한다. 만국박람회는 오랜 세월 유럽과 미국의 전유물이었다. 런던, 파리, 브뤼셀,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세인트루이스 등이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대표적 도시들이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만국박람회를 개최한 나라는 일본. 1970년 오사카에서 만국박람회가 열렸을 때 우리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일본의 비상을 지켜만 봐야 했다.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천년간 으르릉거렸던 영국과 프랑스는 만국박람회를 국가 위상의 대결장으로 삼았다. 런던이 테이프를 끊은 뒤부터 두 도시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적으로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다. 곧바로 신흥 강국 미국이 가세했다. 개최국은 첨단의 발명품이나 혁신적인 기술을 만국박람회에서 공개하곤 했다.

세계사의 변곡점이 된 세계엑스포는 널리 알려진 대로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파리시가 개최한 만국박람회에서 구스타브 에펠은 주탑(主塔) 건설을 제안받는다. 이미 에펠은 포르투갈 두로강의 가라비 철교(鐵橋) 건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상황이었다.

다른 파빌론들처럼 주탑도 20년 뒤에 철거한다는 조건이었다. 에펠이 주탑 디자인을 공개했을 때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어떻게 흉측하게 철골 구조물을 박람회 주탑으로 세울 수 있느냐' '312m 높이까지 철골탑이 올라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 슬로건은 '대전환의 시작'. 그랬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는, 철(鐵)의 시대 개막 선언이었다. 그전까지 유럽인은 건축 자재로 석재와 시멘트를 우대했고 철골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교량이나 철로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철골을 숨기려 했다. 철제는 농기구·연장·무기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했을 뿐이다.

에펠은 왜 세상의 고정관념과 달리 철골로만 이뤄진 탑을 세우겠다고 결심했을까. 때는 18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회 만국박람회가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렸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한 영국은 세계인을 휘둥그레하게 만드는 메인 전시관을 선보였다.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 수정궁(水晶宮)이었다. 철골로 구조를 설계하고 외벽 전체를 유리로 뒤덮었다. 이 수정궁은 경쟁국인 프랑스에 충격을 주었다.

제3회 만국박람회는 프랑스 파리가 개최권을 따냈다. 나폴레옹 3세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수정궁을 능가하는 메인전시관을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산업의 궁전'.

파리에서 장래를 모색하던 스물세 살 청년 에펠은 긴 줄을 선 끝에 '산업의 궁전'에 입장했다. 온통 새롭고 신기한 것들로 가득했다. 화학도(化學徒) 에펠은 '산업의 궁전'과 전시물들을 유심히 관찰한다. 관람객들의 탄성이 뒤엉킨 속에서 그는 미래 세계의 흐름을 읽어낸다. '미래는 철(鐵)의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1887년 2월 '르 탕'지에 실린, 에펠탑을 피라미드와 비교한 구스타브 에펠의 캐리커처. 사진=위키피디아

에펠은 진로를 바꾼다. 곧바로 주철 공장을 운영하는 처남 회사의 도제(徒弟)가 된다. 화학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있었기에 철의 성질을 이해하는 데 수월했다. 얼마 후 철도회사의 사장 비서로 채용된다. 에펠은 철골 구조설계에 자신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해 무서운 집중력으로 구조설계를 독학했다. 나중에 철도회사가 망했지만 에펠은 다른 회사로 옮겨 구조설계를 계속하게 된다.

에펠이 설계한 첫 번째 작업이 22m 교량 철판. 이후 차츰 규모를 늘려간다. 에펠이 교량 설계자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가론 계곡에 걸친 500m 철교 건설. 우연에 우연이 겹쳐 전(全) 공정의 책임자가 된다. 워낙 난공사여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인류 역사상 가장 긴 철교가 성공적으로 놓였다. 에펠의 치밀한 계산 능력 덕분이었다.

계곡에 막혀 쩔쩔맸던 물류(物流)에 숨통이 트였다. 일대 물류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에서 영국에 뒤졌던 프랑스는 에펠로 인해 마침내 철교 건설 역량에서 영국을 앞지르게 되었다. 에펠에게 일감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표적인 것이 마리아 피아교(橋)와 가라비 철교.

에펠탑 건설은, 단순하게 말하면 강 위에 놓인 철교를 지상에 똑바로 세운 것.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 개막날 312m 높이의 철탑이 공개되자 파리 시민들은 환호했다. 에펠탑에 올라가 보는 것이 모든 사람의 소원이 되었다. 20년 뒤에 철거한다는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어졌다.

내셔널몰에서 본 워싱턴 기념탑 / 사진=조성관 작가

미국 워싱턴 DC의 워싱턴 기념탑

에펠탑이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최고(最高)의 구조물은 미국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의 워싱턴 기념탑이었다. 1848년 첫 삽을 떴으나 중간에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자금 부족이 겹쳐 중단되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884년 워싱턴 기념탑이 완공되었다. 높이 170m. 꼭 하늘을 찌르는 것 같다.

워싱턴 기념탑은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모방한 것이다. 워싱턴 기념탑을 감상하는 최선의 방법은 석양 무렵 국회의사당 팔리아멘트에서 링컨기념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보는 것이다. 마치 영화의 롱 테이크(long take) 기법처럼 말이다. 내셔널몰의 잔디밭 위를 걸으며 붉게 물들어가는 저녁놀을 배경으로 서 있는 워싱턴 기념탑은 장관 그 자체다. 황홀하다.

에펠탑의 등장으로 워싱턴 기념탑은 세계 최고에서 2위로 밀려난다. 에펠탑은 장장 42년간 세계 최고를 구가했다. 유럽인들과 미국인들이 에펠탑을 보러 파리로 몰려들었다. 파리는 에펠탑이었고, 에펠탑은 파리였다. 수많은 스토리텔링이 철탑 위에서 만들어졌다.

에펠탑이 1위의 영예를 넘겨준 빌딩은 1930년에 등장한 뉴욕의 크라이슬러빌딩.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 아니다! 아르데코 양식 철골구조물 크라이슬러 빌딩은 맨해튼 마천루 경쟁의 신호탄이었다. 하지만 크라이슬러 빌딩의 영광은 불과 11개월만에 끝난다.

그 주인공은 1931년 5월에 등장한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이하 엠파이어)이다. 높이 380m. 믿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엠파이어는 1930년 4월에 첫 삽을 떠서 1년여만에 1931년 5월에 완공했다. 대공황 시기에 대역사가 이뤄졌다.

엠파이어는 뉴욕 마천루의 상징이면서 미국 자본주의의 랜드마크였다. 이후 엠파이어는 또다른 스토리텔링의 보고가 된다. '킹콩들'이 엠파이어를 기어 올라갔고, 앤디 워홀은 엠파이어를 주인공으로 영화 '엠파이어'를 찍었다. 엠파이어는 1970년까지 39년간 챔피언 벨트를 지켰다. 이번에는 맨해튼 남쪽에 세워진 월드트레이드센터(WTC)가 엠파이어를 제쳤다. 쌍둥이 빌딩인 WTC는 1타워가 415m, 2타워가 417m. WTC빌딩의 영광은 짧게 끝나고 말았다.

2년 뒤 시카고에 세워진 윌리스 빌딩(442m)이 그 주인공이다. 윌리스 타워는 챔피언 벨트를 장장 25년간이나 보유했다. 그러나 우리는 안타깝게도 윌리스 빌딩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 스토리텔링이 만들어지지 않아서다.

타이베이 101. 사진=위키피디아

파리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옮겨가 불붙은 마천루 경쟁이 1998년 마침내 아시아로 넘어왔다. 109년만이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가 452m를 찍어 신의 얼굴에 좀 더 다가갔다. 그러나 '페트로나스 타워'는 최고층의 타이틀을 6년 뒤에 내주게 된다.

2004년 대만에 '타이베이 101' 타워가 문을 열었다. 508m의 '타이베이 101'은 마천루 경쟁이 아시아에서 재개되었음을 알리는 축포였다. '타이베이 101'은 포스트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로 화제를 뿌렸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세워진 '부르즈 할리파'(버즈 칼리파)가 그 주인공이다. 높이가 자그마치 830m다. 아마도 ‘버즈 칼리파’는 챔피언 벨트를 오랜 기간 보유할 것 같다. 600m도 힘든데 800m를 누가 추월할 수 있겠는가.

2017년에 완공된 롯데월드타워 높이는 555m, 세계에서 다섯 번째다. 실제로 전망대 서울스카이에 서면 짜릿한 쾌감과 함께 기분이 좋아진다. 그 충만함이 오래간다. 서울스카이가 5년만에 서울의 자부심이자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배경이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와 롯데월드타워 전경. (공동취재) 2022.8.7/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인간은 왜 최고를 향해 안간힘을 쓸까. 바벨탑을 세우려 했던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처럼 좀 더 신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인가.

마천루는 과시 욕망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정신과의사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1901~1981)은 마천루를 향한 인간 욕망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으로 해석한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는 남근(phallus)의 발기능력을 과시하는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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