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률 광복 77.8%→현재 1%…"우리말 오염 씻어낼 광복 운동 필요"
'아파트 작명'은 우리말의 오염 대표적 사례
전문가들 "영어가 우리말보다 고급스럽고 우월하다는 잘못된 인식 바꿔야"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한국의 문맹률은 광복 직후 77.8%에 달했지만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 덕분에 76년이 지난 현재 1%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읽을 수는 있어도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려운 외국어·외래어가 남용되고 있다.
8월15일 오늘은 제76주년 광복절이다. 지금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한글을 읽고 쓰지만, 일제 치하 36년 동안 한글은 사용할 수 없는 금기의 문자였다. 1935년생인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10살이 되던 초등학교 5학년 때 광복을 맞았다.
"16일 학교에 갔다. 담임인 니시하라(西原) 선생이 칠판에 이종환(李鍾煥)이라고 한자로 쓰더니, 우리들 보고 집에서 부르는 이름과 성을 대라고 했다. 그동안 줄곧 일본 이름으로 통하던 우리들은 서로 한국식 이름을 소개하면서 참으로 기이한 광복 의식을 치렀다. 나는 그것을 '기이한 통성명'이라고 기억한다" (나의 해방 전후, 2004년 출간)
'기이한 통성명' 이전까지 유종호를 비롯해 당시 세대들은 학교에서 일본어를 국어(國語)로 썼고 동쪽에 있는 일본 천황의 궁전을 향해 절을 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광복 이후 전국의 학교들은 9월20일 개학했다. 교실마다 진풍경이 벌어졌다.
"출석을 부르면 아이들이 습관적으로 '하이'라고 대답했다가, 다시 '네'라고 하는 '하이, 네'가 한동안 반복됐다. '도화'(圖畵)는 '미술'로 ''창가'는 '음악'으로 교과목 이름도 다 바뀌었다지만 국어 과목만은 그냥 국어였다. 일본어의 국어가 아닌, 한국말과 글을 가르치는 데 과목 이름은 그대로였으니 참 아이로니컬한 일이었다."
유 평론가의 증언처럼 우리글 '한글'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해방 직후 시급한 당면 과제였다. 건국준비위원회는 1945년 9월 시정방침을 통해 '일반 대중의 문맹 퇴치'를 중요 과제로 선정했다. '우리나라 말과 글을 배우자'는 문맹 퇴치 운동이 이어졌다. 이런 노력은 큰 성과를 거둬 광복 직후 77.8%에 달했던 문맹률은 1970년 조사 결과 7%로 급감했다.
광복 이후 76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1%까지 떨어졌다. 한글을 못 읽고 쓰는 국민이 거의 없다는 소리다. 그러나 한글과 우리말은 다양한 이유에서 금기 아닌 금기어가 되고 있다. 아파트 명칭이 대표적이다.
아파트가 처음 보급되던 1970년대에는 일본풍의 '맨션'(대저택)을 사용하는 곳이 많았다. 정부에선 이를 막기 위해 1976년 아파트에 외국어 사용을 금지했다. 이후 외래어 사용제한이 풀리고 2000년을 전후해 래미안, 자이, 푸르지오 등 각 건설사마다 도입한 상호들이 전면에 나섰다.
최근 신규 분양하는 아파트들은 정체불명의 외국어가 사용되고 있다. 아파트 이름만 보고 입지와 교통여건, 주변 환경, 단지의 성격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외국어를 써야 수요자들이 고급스럽다 느끼고 집값 상승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도 숨어 있다.
국립국어원이 조사한 '국민의 언어 의식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2%가 '아파트나 건물명'을 외국어·외래어 표기가 많은 분야로 꼽았다.
인터넷에선 이런 시류를 자조하듯 아파트 작명법이란 글이 돌고 있다. 아파트 근처에 △ 아무것도 없으면 '더 퍼스트' △4차선 이상의 도로가 있으면 '센트럴' △호수나 강이 있으면 '리버 또는 레이크' △공원이 있으면 '파크 뷰' △산이 있으면 '포레스트' △전철역이 있으면 '메트로' 식이다.
화려한 작명이 도를 넘어서면서 차별화의 의도에서 벗어나 한글 오염에 가까워졌다. 좋다 싶으면 이것저것 갖다붙이다보니 아파트 이름도 길어졌다. 파주시 '가람마을10단지동양엔파트월드메르디앙', 화성시 '나루마을월드메르디앙반도보라빌2차', 남양주시 '해밀마을5단지반도유보라메이플타운' 등 20글자에 육박하는 아파트들도 적지 않다.
일부 신규분양 아파트들은 이제 차별화를 위해 이름을 간략하게 짓는 '군살빼기'에 나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르엘대치'를 비롯해 위례포레자이, 래미안라클래시 등 경쟁률 100대1이 넘은 곳들은 아파트 이름을 10글자 이내로 조정했다. 한글 관련 전문가들은 경제적 효과를 떠나 한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김미형 상명대 한국언어문화전공 교수는 "아파트의 이름도 돈 중심이 아닌 사람 소통을 중시해야 한다"며 "전통적 가치 즉 사람이 중심인 인본주의를 회복해야 진정한 이시대의 진정한 광복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일제강점기는 곧 전통의 단절을 뜻한다. 이런 전통문화와 전통적 가치의 부재가 문화적 자주성에 아직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도 말했다.
정인환 국어문화원연합회 부장은 "광복절을 맞아 어려운 한자어와 영어가 대접받는 이 시기에 빼앗긴 우리말을 다시 찾는 '우리말 광복 운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며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아파트 이름을 영어나 영어 조어로 짓는 건 영어가 한글보다 고급스럽고 우월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키울 수 있다"고도 말했다.
art@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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