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일 근대 이전 강수량 측정기구, '금영 측우기' 국보 된다
문화재청, 금영 측우기·대구 선화당 측우대·창덕궁 측우대 국보 지정 예고
- 이기림 기자
(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근대시기 이전의 강수량 측정 기구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금영 측우기'(보물 제561호)를 비롯해 조선 시대 측우(測雨) 제도를 계통적으로 증명해주는 2점의 측우대인 '대구 선화당 측우대'(보물 제842호)와 '창덕궁 측우대'(보물 제844호)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31일 밝혔다.
다만 원소재의 정확한 표기를 위해 각각 '공주감영 측우기' '대구감영 측우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로 명칭을 변경 예고했다.
이 측우기 3점은 1442년(세종 24년) 조선에서 농업에 활용하고자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측우대를 제작한 이후 그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측우기의 경우 1911년 세계 기상학계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유일하고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이미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금영 측우기는 조선시대 충남지역 감독관청이었던 공주감영에 설치됐던 것으로, 1915년쯤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가 국외로 반출한 뒤 1971년 일본에서 환수돼 서울 기상청이 보관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측우기를 제작해 전국의 감영에 보냈기 때문에 여러 점이 만들어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재는 금영 측우기만 알려져 있다. 와다 유지에 따르면 1915년쯤 국내에 알려진 측우기는 총 5기, 측우대는 총 10기였다.
대구 선화당 측우대는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전후면에는 측우대라는 문구와 '건륭 경인년(1770년, 영조 46) 5월에 만듦'이라는 제작시기가 새겨져 있다.
측우기 제도는 15세기에 확립됐다. 그러나 세종대의 제도는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하지만 영조 46년, 세종대 제도와 척도를 고증해 새롭게 제도를 확립했고, 이를 증명하는 유물이 대구 선화당 측우대이다.
창덕궁 측우대는 1782년(정조 6)에 제작된 것으로, 측우대 제도가 정조 연간(1776~1800)에도 이어졌음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비록 함께 있었던 측우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명문과 '동궐도' 등 회화자료를 통해 창덕궁 이문원(摛文院) 앞에 놓였던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정면에 조선 시대 강수량 제도의 역사를 설명해 놓은 긴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는 측우기 주조 일자와 크기, 설치 장소, 설치 역사 등을 설명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 측우기 3점은 제작시기와 연원이 명확할 뿐만 아니라 농업을 위한 과학적 발명과 그 구체적인 실행을 증명해주는 유물이다.
문화재청은 국보로 지정 예고한 '금영 측우기' 등 총 3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국보)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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