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장 바닥을 흐르는 물에도 시가 있다
예술위, 노숙인·문학인과 평창서 '민들레문학캠프' 개최
- 박창욱 기자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전략) 제만아, 너는 어디 갔느냐? 고향의 맑고 푸른 하늘이 그립다. 초록색의 산과 황금 들판과 지저귀는 새들이 보고 싶다. 밤에는 하늘에 박힌 별과 달 떨어지는 별똥별이 모두 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하늘로 가버린 제만아, 네가 사는 곳이 좋은 집이었으면 좋겠다. 고향 같은 그곳에서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길 빈다.'
노숙인 대상 문학 공모전인 '민들레문학상'의 수상작 ‘방과 일’(한승수 작)의 끝부분이다. 고단한 삶을 헤쳐 나온 주인공이 먼저 죽은 친구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풀어낸다. 이 민들레문학상 수상작엔 시도 있다.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다/ 세차장에 들어오는 차마다 어제의 빗자욱이 진하게 남았다/ 나는 그 진한 빗자욱에 물을 뿌려주고 달래주고 지워준다/ 나의 눈물을 지울 때처럼…(하략)'(김수현 작, '세차장 바닥을 흐르는 물')
노숙인은 강퍅한 현실을 상징한다. 문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한 켠에도 예술은 오롯이 살아 있다. 그렇게 마음에서 문학을 놓지 않은 노숙인 20여명과 기성 문학인 20명이 함께했다. 지난달 25~26일 강원도 평창 일대에서 진행된 '민들레문학캠프'에서다.
이 캠프에 참여한 노숙인들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시, 사단법인 빅이슈가 진행한 ‘민들레 모임’의 구성원들이다. 이들은 캠프 기획자인 윤석정 시인의 말처럼 이번 캠프를 통해 삶의 여백과 성찰을 얻을 수 있었다.
민들레문학캠프는 첫날 ‘나를 닮을 것을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기성 작가들과 노숙인들이 일대일로 짝을 이루어 봉평 이효석 문화마을을 산책하며 마음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노숙인들은 자신과 닮은 풍경이나 대상을 찾아 사진으로 담았다.
강원도 봉평 출신인 김남극 시인이 ‘이효석의 문학과 삶에 대하여’, 박경장 평론가는 ‘문학으로 나를 발견하기’라는 주제로 진행한 특강은 이효석 문학과 삶을 통해 노숙인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캠프의 하이라이트로 ‘문학과 삶이 빛나는 밤-오래 묵으면 묵을수록 단단해지는 생(生)’을 주제로 한 문학공연이 펼쳐졌다. 행사에서 고병태 배우는 노숙인 대상 문학 공모전인 민들레문학상 수상작 ‘방과 일’ 등을 낭송하여 큰 감동을 자아냈다.
김흥남 마임이스트는 움직임퍼포먼스를 통해 역시 민들레문학상 수상작인 ‘세차장 바닥을 흐르는 물’을 표현하여 참가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이날 공연 끝 순서로 등장한 시를 노래하는 그룹 ‘트루베르’의 공연은 시와 노래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줄 수 있는지를 경험적으로 잘 보여줬다.
캠프 이틀째, 참가자들은 평창동계올림픽 경기가 펼쳐질 알펜시아 체육 시설과 오대산 월정사를 방문하여 평창동계올림픽의 분위기를 미리 느끼고 평창의 문화를 체험하며, 일상에서 얻지 못했던 여유를 만끽하며 하루를 보냈다. 특별히 노숙인들에게는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됐다.
이번 캠프에 참가한 한 노숙인은 “사진으로 나누는 얘기가 그렇게 정다운지 처음 알았고, 눈 풍경 속에서 봄을 느꼈다"며 "새봄에는 민들레의 노란 창을 자주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최지애 소설가는 ”함께 한 1박 2일 동안 우리는 서로의 삶의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고, 작가로서 문학 영토를 한 뼘 자라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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