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알고 보면 발 넓은 녹두 문화

전호제 셰프 = 녹두에 대한 관심은 모두 주변 베트남 친구들 때문이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쩨'(Chè)라고 하는 녹두 음료를 만들어 왔다. 달콤한 두유처럼 보였는데 여기에 다양한 젤리를 직접 만들어 함께 먹는다.
모두 베트남 출신 엄마들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바쁜 가운데도 직접 녹두를 삶아 갈아서 커다란 보랭병에 넣어 가지고 왔다. 올여름은 시원한 쩨를 먹으며 찜통 같은 주방의 더위를 이겨낸 셈이다. 돌아가면서 간단한 간식을 만들어 오는 걸 보면 마치 사라졌던 한국의 정과 품앗이 정서를 보는 것 같다.
이들이 가끔 베트남 고향을 갔다 오면 꼭 하나씩 나눠주는 떡이 있다. 바로 '반잇'(Bahn it)이라 하는 바나나잎에 싸서 만든 떡인데 그 안에 녹두로 만든 소가 들어있다. 포삭거리는 녹두소는 마치 우리의 팥처럼 달콤하고 고소했다.
덕분에 현지의 맛을 느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게 먹었는지 모른다. 바나나잎에 싼 것도 있고 대나뭇잎을 이용하기도 한다. 잎을 한 장씩 펼치면 나오는 알싸한 향기가 마치 정글 속 풀냄새 같았다.
달콤한 것으로 보면 녹두로 만든 베트남식 다식도 있다. 관광상품처럼 한 팩씩 포장돼 종이에 꼭꼭 싼 녹두가루 덩어리가 나온다. 이것은 주로 커피나 차를 먹을 때 한 개씩 먹는다.
이처럼 베트남에서 녹두는 우리의 콩과 팥으로 할 수 있는 음식을 두루 만들 수 있는 곡식이다. 각종 죽 종류나 쫄깃한 식감이 필요할 때도 자주 사용된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녹두는 주로 숙주로 소비된다고 한다. 전체 녹두 소비의 절반은 숙주를 키우는 데 사용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마라탕, 쌀국수 같은 아시안 음식의 인기로 점점 소비량이 늘고 있다.
숙주에 사용되는 녹두는 껍질이 온전해야 하는데 이래야 발아율이 높아진다. 흠이 있으면 깐녹두로 가공되기도 한다. 깐녹두는 밥에 넣어 먹기도 하고 닭백숙에 찹쌀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앙금이나 빈대떡을 만들 때도 껍질을 제거해야 한다.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숙주는 주로 나물로 먹었고, 그것도 추석 명절에 제사 음식으로 빠지지 않았다. 바로 먹으면 꽤 괜찮지만, 하루만 지나도 물이 많아 싱거워지는 나물이다. 가끔 도시락 반찬으로 나오기는 했지만 금방 쉬어 버렸던 기억도 난다.
집에서 손만두를 빚을 때도 숙주가 빠지지 않는다. 살짝 데쳐서 찬물에 식힌 후에 물기를 짜낸다. 다진고기에 으깬 두부를 넣고, 씻은 신김치에 준비한 숙주를 섞어준다. 파란 색감으로 대파나 부추도 넣는데, 야채와 고기의 비율에 따라 만두 식감이 결정된다. 특별한 맛이나 향이 없는 숙주가 빠지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해외에 나가보니 숙주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콩나물에 비하면 태국, 베트남 같은 다른 아시안 음식에서 사용이 많기 때문이다. 뉴욕에 살 때 가끔 손만두를 해 먹을 때가 있었는데 숙주, 두부는 쉽게 구입했다. 김치가 없을 땐 근처 차이나타운에서 소금에 절인 배추를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 보면 맛은 꽤 좋았다.
영어로 녹두를 '멍빈'(Mung bean)이라고 한다. 멍은 힌디어에서 녹두를 부르는 이름에서 왔으며 인도가 녹두의 원산지이다. 인도의 '달'(Dal)이라고 하는 콩종류 카레의 종류가 많다. 이 녹두가 아시아로 넘어오면 숙주로 키워 먹는 문화도 생긴 것이다.
이렇듯 녹두는 다른 아시아권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 우리 한식을 알리는 데도 거부감이 적은 재료 중 하나다. 한때 빈대떡이 외국인에게 선호가 높았던 것은 녹두라는 재료가 가진 매력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베트남 녹두 음식을 접하고 나니 우리도 좀 더 다양하게 녹두를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자극을 받게 됐다. 특히 베트남식 다식이나 녹두 음료는 우리 음식에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곧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연휴가 길어 끼니를 고민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이제 예전처럼 직접 추석상을 준비하는 문화는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래도 한 번쯤 녹두를 먹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올 추석엔 눈을 돌려 다양한 나라의 녹두로 만든 먹거리를 경험해 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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