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한글 현판 놓고 갑론을박…"국가 정체성 확립" vs "복원 일관성 유지"
찬성 측 "경복궁은 한글이 태어난 곳"…관광과 국가 정체성도 고려
반대 측 "고증 없는 설치는 복원 기준 흔들어"…문체부 4월에도 여론 수렴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설치하는 방안을 둘러싼 다양한 의견이 31일 팽팽하게 맞섰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광화문 한글 현판 추가 설치를 놓고 본격적인 의견 수렴을 위해 마련한 자리다.
앞서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지난 1월 20일 국무회의에서 기존 한자 현판을 유지하면서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방안을 보고한 바 있다. 토론회는 발제 2건과 지정토론 5건, 방청객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했다.
찬성 측은 광화문 현판 문제를 단순한 복원 기술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문제로 봤다.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는 광화문이 대한민국의 으뜸 상징 공간인 만큼 한글 현판을 달아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의 한자 현판 역시 희미한 사진과 제한된 기록을 토대로 복원된 만큼 절대적인 원형으로 보기 어렵다"며 "노트르담 성당 첨탑처럼 문화유산도 어느 시점의 진정성을 선택해 복원하는 창조적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도 경복궁이 한글이 태어난 곳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광화문에 한글에 대한 설명조차 없다"며 "한글은 단지 자랑스러운 문자를 넘어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갑오개혁기 국문 채택, 1948년 한글 전용 법제화, 문맹 퇴치와 산업화·민주화 과정까지 한글이 국가 형성의 바탕이 됐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반대 측은 경복궁 복원의 일관성과 국가유산의 보존 원칙을 앞세웠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경복궁을 고종 중건기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라며 "2023년에도 고증에 따라 현판의 바탕색과 글자색을 바로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증에 없는 한글 현판을 더하는 순간 복원의 기준 자체가 흔들리며, 문화유산이 현재의 취향과 정치적 메시지에 따라 변형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비판했다.
홍석주 서일대 교수도 같은 맥락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경복궁 복원 사업은 1990년부터 고종 시기 경복궁을 기준으로 장기 복원을 이어온 사업"이라며 "정문인 광화문만 예외를 두면 궁궐 전체 복원의 방향성과 진정성이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한자 현판은 오류를 바로잡아가며 원형에 다가가는 과정의 결과물인데, 여기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것은 오히려 원형에서 멀어지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정토론에서는 찬반을 떠나 다양한 측면을 조망했다. 김권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광화문이 조선의 육조거리에서 오늘의 정치·행정 중심지로 이어져 온 공간이며, 전통과 현대, 국가와 시민, 엄숙함과 유희가 겹친 혼종적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김형우 한반도문화관광연구원장은 광화문이 이미 세계인이 찾는 한국 문화의 상징 공간이 된 만큼, 한글 현판 추가 설치가 '한글의 탄생지'라는 서사를 보강하고 관광 콘텐츠를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전통 건축에서 다중 현판 자체는 낯선 일이 아니었다"면서도 "같은 이름을 한자와 한글로 상하 병기하는 방식에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단순히 발음을 덧적는 수준이라면 한글의 주체적 가치를 오히려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광화문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기념비인 만큼, 한글 현판 논의를 문자 병기 차원이 아니라 새로운 상징 체계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로 넓혀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문체부는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추가 의견 수렴을 이어갈 계획이다. 최 장관은 광화문이 역사와 미래가 공존하는 대한민국 대표 공간인 만큼 열린 자세로 여러 의견을 폭넓게 듣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4월 초 누리집에 의견 게시판을 열고 전문가 의견 조사와 대국민 설문도 병행해 한글 현판 설치 방안을 구체화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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