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춘당 종택'·'소대헌·호연재 고택' 국가문화재 됐다

'대전 동춘당 종택' 전경. 이하 문화재청 제공 ⓒ News1
'대전 동춘당 종택' 전경. 이하 문화재청 제공 ⓒ News1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대전 동춘당 종택'과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중요민속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된 '대전 동춘당 고택'(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호 '회덕 동춘 고택')은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5대조 송요년(1429~1499)이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몇 차례 옮겨 지었으며, 현재는 1835년 중건할 때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이전 충청지역 살림집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희소성이 있고, 건물을 짓거나 고쳐 지은 내력을 적은 '상량문(上樑文) 기록 등을 통해 변천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다.

고택의 안채는 충청지역에서는 드문 ‘ㄷ’자형 평면을 이루며, 중앙에 놓인 6칸 규모의 대청과 '양통집' 구조인 서쪽의 날개채, 세로로 긴 안마당 구성은 이 지역 상류주택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 규모가 큰 일자형의 사랑채는 큰 사랑방과 작은 사랑방이 별도의 마루방을 갖고 있다. 양통집은 안방, 사랑방, 부엌, 마루 등이 한 채에 딸려 있으며 측면이 2칸인 집을 말한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내‧외담이 설치되어 있다. 담은 그리 높지 않지만 안채와 사랑채의 높이를 고려하여 시선을 차단할 정도의 가림벽 역할을 하고 있어 세심한 조형성을 보여준다.

대전 동춘당 고택은 조선 후기 호서지역의 명현인 동춘당 송준길의 종가로, '불천위 제사'(큰 공훈이나 덕이 높아 4대가 지나도 영구히 지내는 제사)와 기타 제례가 그대로 전승되고 있다. 또, 문중에서 소장하고 있는 방대한 고문서 등은 조선 중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집안의 생활사와 지역 향촌사회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소대헌과 호연재 전경 ⓒ News1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된 '대전 소대헌과 호연재'는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으로,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가 1714년 옮겨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 김씨(1681~1722)는 17~18세기 여류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한시 134수를 남겼다.

이 고택은 조선 중기 대전지역의 살림집을 이해할 수 있는 건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충청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큰 사랑채와 작은 사랑채를 동시에 갖추고 있으며, 큰사랑채는 양통집 구조이다. 대청을 한쪽에 두는 방식이나 안채의 마루방과 툇마루 등을 전면뿐만 아니라 사방에 다양한 크기로 배치하는 양식은 지역적 특색을 나타낸다.

큰집 격인 동춘당 고택과 같이 송준길 가문으로서 호서지역 명문가 후손 집안으로의 면모를 지니고 있으며, 비교적 조선 중기의 원형이 잘 남아 있다. 또 대전지역에서는 살림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적 요소를 알 수 있는 희소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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