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에서 개미까지 … 인간과 풀벌레의 공존사
곤충은 도감의 대상일까 … '곤충 인문학'의 다른 질문
[신간] '곤충 인문학'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곤충 인문학'은 곤충도감에 머물던 시선을 인간과 곤충이 공존하는 이야기로 넓힌다. 저자 이상헌은 접사 사진과 역사·예술·생태 사례를 묶어 풀벌레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관계망을 함께 짚는다.
곤충의 이름과 학명, 형태와 습성을 외우는 데서 벗어난다. 이상헌은 곤충을 분류표의 대상으로 두지 않고 인간과 함께 역사를 지나온 존재로 다시 불러낸다. 접사 사진을 오래 찍어온 저자의 이력은 서술 방식에도 배어 있다. 장면을 바짝 끌어당긴 뒤 그 뒤편에 쌓인 일화와 시대의 흔적을 붙여 곤충을 둘러싼 인간사의 결을 읽게 한다.
1장은 곤충 자체보다 곤충을 둘러싼 인간의 움직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누니'와 '멋쟁이', 나보코프, 야차굼바, 학명, 새날개 밀수꾼 같은 소재가 한 장 안에서 이어진다.
"시인 백석과 소설가 이효석은 노비나를 이상향으로 그리며 여러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17쪽) "76세의 정정했던 나보코프는 다보스 산맥에서 혼자 나비를 채집하다 가파른 산길을 구른다."(28쪽)
이 장의 사례들은 곤충이 자연사 표본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북아 근현대사의 비극, 수집의 욕망, 문학과 탐사의 집착이 곤충이라는 작은 대상에 겹쳐진다.
2장은 예술과 과학의 접점을 더 강하게 밀어 올린다. '곽·궤·장' 이야기에서 출발해 플랑드르 화가, 보이저호를 타고 우주여행 중인 기생벌, 초충도, 옥나방, 독나방의 떼춤까지 시야를 넓힌다. 장면은 화가의 손끝과 과학자의 관찰, 수출품과 우주탐사 사이를 오간다. 곤충은 여기서 자연물인 동시에 문명과 취향, 기술의 흔적을 비추는 매개가 된다.
3장은 생존 기술과 위장의 세계를 전면에 세운다. 똥벌레의 집착, 방귀벌레의 폭탄, 거미줄의 쓰임, 따라쟁이의 속임수, 혼수품 사기와 참나무 진액 쟁탈전이 이어진다.
저자는 곤충의 몸을 기묘한 장치로만 소비하지 않는다. 여치와 베짱이의 몸집과 날개, 포식성과 위장 같은 차이를 짚으며 생김새가 곧 생존 방식으로 이어지는 장면을 구체화한다.
4장으로 넘어가면 인간과 곤충의 거리는 더 가까워진다. 늘보 털에 기대어 사는 나방, 모스 부호를 보내는 개미벌, 전염병 매개체, 반딧불이를 둘러싼 경쟁, 왕바다리와 꿀벌 유괴벌이 한 흐름으로 묶인다.
이 대목에서는 생태계 안의 관계가 곧 몸의 문제로 번진다. 익숙한 개미와 모기, 반딧불이조차 다른 생물과 부딪치며 살아남는 방식 속에서 새로운 표정을 드러낸다.
5장은 생태계의 저울 위에 선 인간과 풀벌레를 다시 불러낸다. 로커스트와 종벌레, 스캐럽과 풍뎅이, 새끼를 돌보는 곤충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먹이와 이동, 돌봄의 문제를 함께 비춘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말은 관계와 연결이다. 한 종의 특징을 떼어 설명하기보다 서로 얽히는 방식과 그 안에서 생기는 질서, 충돌, 공존을 반복해서 묻는다.
그래서 이 책의 범위는 곤충 상식에 머물지 않는다. 풀벌레를 통해 인간이 무엇을 보고 어떻게 연결하며 어떤 욕망을 투영해 왔는지를 함께 살핀다.
이상헌은 매크로 세계와 미시 세계를 함께 살피는 글잡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IT 혁명 때부터 사진과 글을 써왔고 '로봇 아닙니다 곤충입니다', '길 위에서 배우는 교과서', '풀벌레 이야기 도감'을 펴냈다.
저자는 곤충을 이름과 형태로만 외워 온 시선으로는 놓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생태계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다시 묻게 한다.
△ '곤충 인문학'/ 이상헌 지음/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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