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1편·시 7편·'5문 5답'…현호정·임승유 협업 SF

[신간] '청포도를 줄게'

'청포도를 줄게'는 현호정의 소설 '청포도의 빛'과 임승유의 시 '숙모' 연작을 한 권에 묶어 지금 여기에 없는 존재를 불러내는 감각을 따라간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청포도를 줄게'는 현호정의 소설 '청포도의 빛'과 임승유의 시 '숙모' 연작을 한 권에 묶어 지금 여기에 없는 존재를 불러내는 감각을 따라간다. 현호정은 먼 행성으로 떠난 아버지의 편지로, 임승유는 반복해 불리는 '숙모'의 목소리로 같은 SF의 태도를 서로 다른 장르에서 밀어 올린다.

이 책은 소설 한 편과 시 일곱 편, 그리고 '5문 5답'으로 짜였다. 한 권 안에서 장르는 갈라지지만, 지금 곁에 없는 존재를 끝내 호출하려는 움직임은 한 방향으로 모인다.

현호정의 '청포도의 빛'은 지구에 아이를 남겨두고 먼 행성으로 간 아버지의 편지 형식을 취한다. 빛의 속도로 날아간 편지가 닿을 즈음 아이는 이미 늙었을 수 있다는 거리감이 서사의 전제다. 닿지 못할 가능성을 안고도 말을 멈추지 않는 태도가 소설의 중심을 이룬다.

편지가 향하는 행성 '망울'은 중력이 강해 모든 것이 납작하고, 사람들은 눈동자로 각도를 재며 광합성으로 살아간다. 그곳에서 '루'는 청포도이자 눈동자이자 태양을 함께 가리키고, 사전의 마지막 뜻은 희망으로 놓인다. 낯선 세계의 설정은 부재를 견디는 마음과 맞물려 움직인다.

임승유의 시 일곱 편은 모두 '숙모'라는 한 제목을 단다. 줄넘기를 하다 그대로 나이를 먹어 숙모가 된 사람, 건넛마을에 있거나 산 넘고 물 건너 있는 사람처럼 시 속의 숙모는 붙잡히지 않는 존재로 머문다. 질녀가 그 이름을 거듭 부르는 동안 멀리 있던 인물은 점차 현재의 자리로 옮겨온다.

소설과 시를 한 권에 나란히 두는 방식은 이 시리즈의 실험이기도 하다. 각 권은 소설가 한 명과 시인 한 명이 짝을 이뤄 SF를 공통의 키워드로 공유한다. '청포도를 줄게'의 두 사람은 각자 원고를 써 내려가면서도 중간 단계의 글을 서로 나눠 읽으며 마무리했다.

책 말미의 '5문 5답'에는 서로의 작품을 읽은 소감도 실렸다. 현호정은 임승유의 시에서 "숙모에 대하여 써야만 한다는 예감과 확신"을 가장 인상적으로 짚었고, 임승유는 현호정의 소설을 다시 읽으며 "이게 SF소설이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말한다.

현호정은 2020년 제1회 박지리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한 방울의 내가', 장편소설 '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삼색도' 등을 펴냈다. 임승유는 2011년 '문학과사회'에 '계속 웃어라'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청포도를 줄게'는 소설과 시가 서로의 빈틈을 메우기보다 어긋남을 드러내며 함께 가는 방식을 택한다. 편지와 호명, 부재와 호출이라는 두 축이 겹치면서 SF를 장르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로 다시 묻게 한다.

△ '청포도를 줄게'/ 현호정·임승유 지음/ 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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