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가 진짜라면, 세계는 가짜다"…김희선·김승일의 SF 소설×시

[신간] '천사가 지구 옆을 스쳐 갈 때'

'천사가 지구 옆을 스쳐 갈 때'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누군가의 내부에는 끝내 남는 이름과 감각을 소설과 시로 붙든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천사가 지구 옆을 스쳐 갈 때'는 세상에서 사라졌지만 누군가의 내부에는 끝내 남는 이름과 감각을 소설과 시로 붙든다. 저자 김희선과 김승일은 소설 1편과 시 7편, '5문 5답'을 한 권에 묶어 SF를 장르보다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로 밀고 나간다.

이 책의 중심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데 나에게만 남은 것이 놓여 있다. 김희선의 소설 '하늘에서도 땅과 같이'에서는 영화감독인 주인공이 '영주'라는 이름을 붙들고, 김승일의 시에서는 세상에서 지워진 어깨동무의 감각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존재의 기억이 떠돈다.

소설과 시를 한 권에 나란히 싣는 방식은 드물지만, 이 책은 SF를 두 장르를 잇는 공통 감각으로 삼는다. 각각의 글은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기보다 느슨하게 연결되며, 소설의 서사는 시의 공백을 흔들고 시의 공백은 소설의 균열을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권말에는 '5문 5답'도 실렸다. 두 사람은 각자의 글을 쓰고 서로의 중간 원고를 나눠 읽으며 마무리했고, 그 과정에서 같은 SF가 서로 다른 모양으로 번역됐는지도 이 문답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희선의 소설은 없는 이름을 좇는 서사로 움직인다. 주인공은 '영주'의 흔적을 찾지 못한 채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흔드는 약을 복용하고, 영주가 진짜라면 세계가 가짜라는 역설 앞에서 끝내 확인되지 않는 세계를 통과한다.

김승일의 시편은 사라진 행위와 뒤늦게 남은 목소리를 더 짧고 날카로운 이미지로 압축한다. '과학 밖 픽션'에서는 어깨동무라는 행위가 모두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뒤 화자에게만 남고, '슬픔을 느낄 줄 아는 나라는 사람'과 '생물이 아닌 존재에 대한 연민'은 미래의 친구와 인간 의식이 주입된 기계 같은 존재들을 불러낸다.

책의 구성도 선명하다. 김희선의 소설 1편 뒤에 김승일의 시 7편이 이어지고 마지막에 '5문 5답'이 붙어, 한 권 안에서 서사와 이미지, 질문과 응답이 차례로 맞물린다.

문답에 실린 두 사람의 말은 이 책의 좌표를 더 또렷하게 잡는다. 김희선은 SF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꿀 수 있는 유일한 꿈"으로 말하고, 김승일은 시와 SF가 모두 시공간을 요약하는 일이라고 본다.

△ '천사가 지구 옆을 스쳐 갈 때'/ 김희선 지음/ 1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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