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녀는 죽고, 그만이 홀로 남았다"…상실의 기억을 키워 가는 소설

[신간] '분재'

소설은 에밀리아의 죽음과 훌리오의 생존을 먼저 내놓은 뒤,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분재'는 첫 문장에서 결말을 드러낸 채 훌리오와 에밀리아의 사랑, 상실, 기억을 짧은 서사에 압축한다. 저자 알레한드로 삼브라는 시와 산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문장으로 사라진 사랑과 피노체트 독재 시대를 건너온 생존자들의 부서진 기억을 함께 짚는다.

소설은 에밀리아의 죽음과 훌리오의 생존을 먼저 내놓은 뒤,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결말을 감춘 채 긴장을 끌어올리는 방식이 아니라 이미 끝난 사랑의 흔적이 어떻게 남는지 좇는 구조다.

훌리오와 에밀리아는 대학에서 '스페인어 통사론' 시험을 준비하다 가까워진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었다는 두 사람의 허세와 거짓말은 같은 책과 같은 문장을 공유하는 관계로 번지고, 그 친밀감은 하나의 '덩어리'처럼 굳어 간다.

이 관계는 두 사람이 함께 읽는 마세도니오 페르난데스의 짧은 소설 '탄탈리아'가 예고하듯 종말로 향한다. 시간이 흐른 뒤 둘은 한때 꿈꾸던 삶에 닿지 못한 채 각자의 고독 속에 남고, 에밀리아는 마드리드의 허름한 골목을 떠돌며 훌리오는 실패를 감추려 다른 소설의 원고를 대신 쓸 이야기를 꾸며 낸다.

그렇게 상상 속에서 자라난 소설의 이름이 '분재'다. 훌리오는 문학의 언저리를 맴돌던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분재 한 그루를 기르기로 하고, 소설 속 분재는 사라진 사랑과 되살아난 기억, 그리고 글쓰기 자체를 함께 가리키는 형상으로 놓인다.

알레한드로 삼브라는 산문보다 시로 먼저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첫 산문 작품인 '분재'에서도 그는 시와 산문의 경계를 단정하게 나누지 않고 형식과 서사를 잇고 자르며 짧은 분량 안에 압축된 리듬을 만든다.

이 작품은 로베르토 볼라뇨 이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연 소설로 거론돼 왔다. 출간과 함께 칠레비평가협회상을 받았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마술적 리얼리즘과 아방가르드의 자장 안에 있으면서도 다른 방향으로 뻗어 나간 칠레 문학의 한 장면으로 자리 잡았다.

1975년 칠레 산티아고주 마이푸에서 태어난 삼브라는 칠레 대학교에서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고 칠레 교황청립 가톨릭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디에고 포르탈레스 대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문학 비평과 칼럼을 써 왔으며, '분재'는 2011년 크리스티안 히메네스 감독이 영화로 옮겨 칸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 '분재'/ 알레한드로 삼브라 지음/ 엄지영 옮김/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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