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의 시간과 이별 뒤의 공원…방수책에 담긴 권혜영과 김혜진의 소설

[신간] '오렌지빛 해변의 소설'

'오렌지빛 해변의 소설'은 끝나기 직전의 계절이 남기는 조급함과 상실을 두 편의 단편으로 압축한다. 권혜영과 김혜진은 미끄럼틀과 줄넘기라는 반복의 장면을 따라가며 여름의 느슨한 시간과 그 안에서 미세하게 바뀌는 감정을 짚는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오렌지빛 해변의 소설'은 끝나기 직전의 계절이 남기는 조급함과 상실을 두 편의 단편으로 압축한다. 권혜영과 김혜진은 미끄럼틀과 줄넘기라는 반복의 장면을 따라가며 여름의 느슨한 시간과 그 안에서 미세하게 바뀌는 감정을 짚는다.

여름이 왜 유독 소설과 어울리는지, 이 책은 계절의 분위기보다 시간의 감각에서 답을 찾는다. 길어진 낮과 금세 지나가는 밤, 잠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쉬운 계절의 리듬이 이야기의 틈을 만든다는 문제의식이 두 편 전체를 감싼다.

첫 작품 '띠부띠부 랜덤 슬라이드'는 퇴사 뒤 실업급여에 기대 살아가는 인물의 무중력 같은 시간을 따라간다. 대부분을 누워 지내던 인물은 희귀 띠부씰 거래를 하러 나갔다가 아이들이 미끄럼틀 위로 물건을 굴려 보내는 장면을 본다. 아무도 타지 않는 미끄럼틀과 이유 없이 오르내리는 물건들은 목적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닮았다.

'줄넘기'는 이별 통보를 받은 뒤 공원을 배회하던 인물이 매일 같은 자리에서 줄넘기를 하는 노인을 만나면서 움직인다. 10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는 반복은 처음에는 기이하지만 곧 하나의 리듬이 된다.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 줄넘기는 상실을 다른 형태로 건너가게 하는 통로가 된다.

두 작품은 끝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행위를 통해 여름의 시간을 보여준다. 한쪽에는 미끄럼틀을 오가는 물건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같은 자리의 줄넘기가 있다. 목적 없는 움직임과 되풀이되는 몸짓이 짧은 계절의 조급함, 그리고 그 안에서 남는 감정을 함께 드러낸다.

책은 여름이 소설 판매가 높은 계절이라는 통념 대신, 현실의 밀도가 잠시 느슨해지는 시기라는 감각을 앞세운다. 휴가와 여행, 긴 낮과 짧은 밤이 만드는 틈에서 반복과 우연, 상실과 추억이 더 선명해진다는 시선이다. 그래서 여름은 밝고 뜨거운 계절이면서도 짧게 응축된 감정을 드러내는 시간으로 읽힌다.

권혜영은 2020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소설집 '사랑 파먹기'를 냈다. 김혜진은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축복을 비는 마음', '달걀의 온기'와 장편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등을 써왔다.

이 책은 해변이나 수영장처럼 물가의 풍경을 직접 묘사하기보다, 여름에만 가능할 법한 반복과 소진의 감각을 붙든다. 두 편의 소설이 남기는 질문도 거기에 있다. 아무 일도 아닌 듯 지나가는 시간이 어떻게 한 사람의 상실과 변화로 이어지는지, 그 짧은 계절의 리듬 안에서 다시 보게 한다.

△ '오렌지빛 해변의 소설'/ 권혜영·김혜진 지음/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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