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은 당신의 죄가 아니다"…영끌·전세·보이스피싱의 사슬
2023년 개인회생 신청자 중 47%가 2030 청년
[신간] '청년 파산'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청년 파산'은 2030 청년의 빚이 개인 실패가 아니라 구조 문제로 번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 박기태 변호사는 회생·파산 실무에서 만난 사례와 통계를 바탕으로 도산법을 재기의 안전망으로 다시 읽는다.
빚은 청년의 삶에서 사건이 아니라 일상이 됐다. 이 책은 2023년 개인회생 신청자 중 47%가 2030 청년이었다는 수치에서 출발해 학자금 대출, 장기 미취업, 전세 불안, 투자 사기, 보이스피싱이 한 사람의 생애를 어떻게 압박하는지 좇는다.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 평균 4000만 원의 학자금 채무를 안고 출발하는 청년에게 구직은 곧 무급노동이 된다. 책은 학기당 500만 원의 입장권, 첫 월급 240만 원이라는 착시, 결혼과 내일을 지워버린 벼랑 끝의 마음을 한 줄기로 묶는다.
한때 미래 준비였던 저축은 이 세대에서 생존 수단이 되지 못한다. 28세에 취업해 40세까지 12년간 저축 가능한 돈이 약 2억5000만 원인데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값은 6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뛰었다는 대목은 청년이 왜 저축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다고 느끼는지 보여준다.
주거는 이 책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압박의 축이다. 2억 원짜리 전세 계약서, 깡통전세, '빌라왕'의 죽음과 남겨진 빚, '지금 아니면 평생 내 집은 없다'는 공포가 겹치면서 청년의 영끌은 투기보다 주거 생존에 가까운 선택으로 제시된다.
책은 부채가 사기 범죄의 먹잇감이 되는 경로도 촘촘히 따라간다. 포모를 자극하는 주식 리딩방 사기, 선의를 파고드는 부업 사기, '신용불량자 대출 가능'이라는 문구로 계좌와 아이디를 넘기게 하는 수법이 청년을 보이스피싱 피의자로까지 밀어 넣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금융 거래가 막힌 청년은 다시 범죄 조직의 표적이 되고, '한국인 명의의 신분증'과 한국 금융 시스템 접속 권한을 노리는 글로벌 조직 앞에서 노동력 이상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본문 곳곳에는 '0.7평의 감옥'과 본인인증조차 할 수 없는 상태, 은둔으로 밀려나는 장면이 이어진다. 책이 겨눈 것은 개별 실패담이 아니라 빚이 어떻게 사회적 사망의 문턱을 만드느냐는 질문이다.
저자는 회생·파산을 도덕적 해이의 표식으로 보는 시선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실제 회생·파산 법정에서 채권자의 90% 이상이 거대 금융기관이라는 점을 짚으며, 채무자를 향한 비난이 현실을 얼마나 빗나가는지 되묻는다.
책은 대출 이자의 성격을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설명한다. 은행이 100명에게 돈을 빌려줄 때 이미 5명 안팎의 파산 가능성을 계산해 나머지 95명의 이자에 반영한다면, 회생·파산 제도는 시혜가 아니라 미리 낸 보험료를 정당하게 청구하는 장치라는 논리다.
이 대목에서 도산법은 단순한 감면 제도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안전그물로 재정의된다. 파괴된 잔해를 치우고 다시 짓는 과정이 빨라야 혁신도 가능하다는 설명과 함께, 회생·파산은 국가가 운영해야 할 최소한의 사회 시스템으로 놓인다.
5장은 '재기의 사다리'를 위한 9가지 정책 제안으로 이어진다. 불법 브로커 퇴출과 클린 바우처 제도, 48시간 임시중지 제도, 긴급 생계비 브릿지 대출, 전국 법원 표준 실무준칙 법제화, 원스톱 플랫폼, 개인 채권자 최소 변제율 보장, 대출 책임 부과, 소액 마이너스 통장과 크레딧 빌딩 적금, Push형 복지 시스템이 차례로 제시된다.
말미에는 '실전! 회생·파산·워크아웃 완벽 가이드'도 붙였다. 자신의 소득과 재산에 맞는 제도를 고르는 법부터 악덕 브로커를 걸러내고 법률 대리인을 찾는 방식까지 실무형 정보가 담겼다.
박기태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법학전문대학원을 거쳐 12년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약 15년간 노숙인 관련 봉사를 이어왔고, 회생·파산과 보이스피싱·사기 범죄 업무에 집중해왔다.
△ '청년 파산'/ 박기태 지음/ 352쪽
art@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