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피로를 우울로 오해할까…바로 '내부감각 문해력' 탓입니다
[신간]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감정의 출발점을 다시 묻는 뇌과학책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는 불안과 우울, 무기력을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몸과 뇌가 주고받는 신호의 결과로 다시 읽는다. 저자 송주현은 '내부감각 문해력'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몸의 이상 신호가 감정으로 번역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짜증과 공포, 무기력은 마음속에서 갑자기 솟는 현상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장과 간, 심장과 폐, 면역계와 근육이 먼저 보내는 변화에서 출발한다고 본다. 뇌는 이 신호를 모아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편집자에 가깝고, 이 읽기 과정이 어긋날 때 피로가 우울로, 내장의 요동이 공포로, 근육의 긴장이 분노로 잘못 해석될 수 있다.
'내부감각 문해력'이 핵심 개념이다. 뇌가 몸 안에서 올라오는 감각을 얼마나 정확히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같은 생리 변화도 전혀 다른 정서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감정은 뇌의 독백이 아니다. 신경과 혈액, 면역계가 실어 나르는 정보가 뇌에 모이고, 뇌는 과거 경험과 현재 맥락을 겹쳐 감정의 표지를 붙인다. 이 과정은 스트레스 반응의 속도 차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라벨링, 하루의 기분을 좌우하는 생체 리듬 같은 주제로 이어진다. 감정은 고정된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몸 상태와 해석 방식이 얽힌 결과다.
중반부는 장-뇌 축과 간-뇌 축을 앞세워 감정의 경로를 구체화한다. 장내 미생물과 호르몬, 간의 대사 변화가 우울과 불안, 번아웃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여러 연구 사례로 풀어낸다.
2011년 칠레 연구팀이 스트레스를 잘 받는 쥐에게 특정 유산균을 투여했더니 불안과 우울 행동이 줄었지만, 장과 뇌를 잇는 미주신경을 절단하자 효과가 사라졌다. 이 사례는 장내 미생물과 정서 상태의 연결을 보여준다.
숙취 뒤 찾아오는 브레인 포그도 간의 자원 고갈과 뇌의 에너지 공급 문제로 설명한다. 무기력과 인지 저하가 감정의 문제 탓이 아니라 생물학적 반응의 연쇄작용일 수 있다.
저자는 폐-뇌 축과 심장-뇌 축으로 시선을 옮겨 감정이 리듬을 타고 조율되는 과정도 다룬다. 놀라거나 몰입할 때 짧고 깊은 들숨이 뇌의 각인 과정과 맞물리고, 규칙적인 심장 박동이 자아 감각의 바탕이 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수면을 다룬 대목에서는 비렘수면과 렘수면의 역할을 나눠 본다. 밤 전반부의 깊은 잠이 뇌의 청소와 기억 저장을 맡고, 새벽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렘수면이 감정의 편집과 회복을 담당한다는 구조다.
이 흐름 속에서 수면 부족과 야근, 불규칙한 생활은 단순한 피로 누적이 아니라 감정 조절 체계를 흔드는 조건으로 제시된다. 몸의 리듬이 무너지면 정서의 리듬도 함께 흔들린다는 점을 여러 사례와 함께 짚는다.
후반부는 피부-뇌 축, 근육-뇌 축, 면역-뇌 축을 거쳐 관계의 문제로 나아간다. 웅크린 자세가 과거의 실패와 우울의 기억을 자동으로 호출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나, 만성 염증과 기분 저하의 연결은 감정을 전신의 문제로 넓힌다.
사회적 고립을 다루는 장에서는 외로움의 위험성을 생물학적 차원에서 설명한다. 디지털 연결이 늘어도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는 눈빛과 목소리, 체온의 접촉이 빠진다면 감정 조율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고 본다.
'생리적 공동조절'이라는 개념도 이 대목에서 등장한다. 타인과 같은 리듬으로 숨 쉬고 반응하는 경험이 감정 회복에 실제로 작동한다는 설명은 감정을 개인 내부의 사건으로만 보지 않게 만든다.
송주현은 연세대학교에서 이학박사를 받고 같은 대학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강사를 거쳐 현재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신경대사 기전을 연구해왔고 최근에는 위·장·간·폐·심장 등 여러 장기와 뇌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가 남기는 질문은 분명하다. 까닭 모를 불안과 우울, 무기력을 자책으로 밀어 넣기보다 몸이 먼저 보내는 신호를 어떻게 읽을지 다시 묻게 한다.
△ '뇌는 혼자 울지 않는다'/ 송주현 지음/ 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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