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조들이 본 '핼리혜성' 모습은…'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 완간
원고지 1만 6400매에 물리·인문 자연학 기록 총망라
한국학중앙연구원 김일권 교수, 15년간 집필
- 김정한 기자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삼국사기'는 대개 왕들의 전쟁과 정치를 다룬 딱딱한 기록이다. 하지만 900여 년 전 고대인들이 바라본 하늘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가 고려 인종 23년(1145)에 나온 '삼국사기' 속 천문, 기상, 역법, 시간, 신화, 영징, 제사 기록을 모조리 모아 정리한 '삼국사기 자연학' 시리즈(전 7책)를 세상에 내놨다고 28일 밝혔다.
이번 총서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전공 김일권 교수가 15년 동안 원고지 1만 6400매에 달하는 분량을 홀로 집필해 완성한 집념의 결과물이다. 김 교수는 과거의 자연 현상을 바탕으로 당시의 사회를 분석하는 '역사자연학'이라는 새로운 현미경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시리즈의 앞부분인 1~4책은 일식과 혜성, 자연재해 등 눈에 보이는 과학적 현상을 다룬다. 저자는 2000년 동안 한반도를 지나간 핼리혜성의 흔적과 1000년간 발생한 개기·금환일식 기록을 국내 최초로 도표화했다. 특히 중국 사료 20종을 샅샅이 대조해 연월 기록 2570건, 연월일 기록 201건, 간지일 기록 83건을 모두 조사하고 이를 오늘날의 양력 날짜로 돌려놓았다. 덕분에 고구려의 대중국 외교 기록 392건 중 307건의 정확한 날짜가 복원됐고,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이 일어난 날이 612년 7월 24일(양력 8월 26일)이라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어지는 5~7책은 신화와 제사 같은 고대인의 마음을 추적한다. 삼국 시대의 기이한 현상들을 상서로운 징조인 '길험', 주술적인 '무험', 신비한 동물인 '상금'과 '서수' 등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분석했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실제 개기일식 사건과 연결하고, 경주 첨성대를 별을 보던 곳이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궁'으로 해석한 대목은 무척 흥미롭다.
오늘날 우리는 일기예보를 보며 우산을 챙길 뿐, 하늘의 변화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대인들에게 갑작스러운 가뭄이나 혜성의 등장은 공동체의 운명이 걸린 절박한 경고였다. 자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국가의 질서를 세우고 백성의 불안을 달랬던 선조들의 지혜가 이 방대한 데이터 속에 숨 쉬고 있다.
메마른 현대 사회에서 이 책이 보여주는 고대 한국인의 거대한 세계관은, 우리가 잃어버린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금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옛 기록들을 단순한 해석에 가두지 않고 철저하게 수치와 데이터로 증명해 낸 뜻깊은 작업이다. 삼국사기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물론이고 우리 고대 문화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일반 대중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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