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의 자리에서 쓰는 글은 공포와 비극…그러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퓰리처상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 문학과 타자성응 다시 묻다
[신간]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200쪽에 담은 문학 비평과 자서전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전쟁과 이주,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의 기억을 바탕으로 문학과 타자성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타자의 삶을 지키려 하지 않고 우리의 삶만 방어한다면 그 삶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101~102쪽)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는 전쟁과 이주, 식민주의와 인종차별의 기억을 바탕으로 문학과 타자성의 문제를 파고들었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받은 비엣 타인 응우옌은 이번 책에서 '타자의 자리에서 쓴다는 것'의 의미를 문학 비평과 자전적 서사로 함께 풀어낸다.

응우옌은 타자의 고통을 대신 말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누가 왜 침묵당하는지까지 문학의 질문으로 끌어온다. 이 책은 하버드대학교 찰스 엘리엇 노턴 강의를 바탕으로 쓴 문학 비평서이자 자서전이다. 2025년 전미도서 비평가협회상 비평 부문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응우옌은 자신을 '베트남에서 태어났으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존재로 받아들인다. 그는 베트남인과 미국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했던 경험을 글쓰기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난민이자 난민의 자식이라는 정체성은 책 전반의 문제의식을 이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 멜빌의 '모비딕' 같은 문학사의 고전을 다시 읽는다. 식민주의와 제국, 인종화된 타자, 정복의 욕망이 이 작품들 안에 어떻게 새겨졌는지를 살피는 방식이다.

토니 모리슨의 '타자의 기원', 글로리아 안살두아의 '국경지대/라 프론테라', 차학경의 '딕테'도 함께 다룬다. 응우옌은 이 작품들에서 타자가 지워지는 방식과 다시 말할 자리를 찾는 과정을 읽어낸다.

저자가 붙드는 또 다른 축은 연대다. 응우옌은 아시아계 미국인의 문학과 정치가 자기방어, 수용, 연대라는 방식으로 조직돼 왔다고 보면서, 특정 공동체만 지키는 제한적 연대를 넘어 다른 타자의 삶까지 함께 지키는 확장적 연대를 제안한다.

그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일 수 있고, 타자이면서 또 다른 타자를 밀어내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불편한 인식을 외면하지 않는다. 바로 그 지점이 윤리와 정치, 예술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결국 타자를 하나의 정체성이나 단일한 서사로 고정하지 않는다. 타자의 삶을 지키는 일이 우리 자신의 삶을 다시 묻는 일이며, 문학이 그 질문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 구원하거나 파괴하거나/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박설영 옮김/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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