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서점 대표들 "도서정가제가 목죄고…화제작 나와도 발만 동동"

최휘영 장관, 14일 청학서점서 밀양 지역서점 대표들과 간담회
학교 구매·도서정가제·베스트셀러 배분 등 서점 생태계 쟁점 논의

왼쪽부터 신찬섭 청학서점 대표, 이미라 청학서점 밀고점 대표, 신관섭 동아서점 대표, 이찬희 미리벌서점 대표, 신혜승 동행서림 대표

(밀양=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도서정가제가 서점을 지키기 위한 제도라면 소형 지역서점의 실제 중간이윤 구조와 할인 경쟁의 압박까지 함께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아울러 한강 작가나 유명 정치인처럼 큰 화제가 되는 책이 나오면 지역서점에는 물량이 제때 내려오지 않는 경우가 반복된다며 구조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14일 경남 밀양의 신찬섭 청학서점 대표는 도서정가제가 지역서점에는 보호 장치보다 부담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지역서점은 현행 제도를 사실상 '15% 할인 보증제'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법적으로 15% 할인이 가능하다 보니 경쟁력 있는 서점들이 대부분 최대 할인율을 적용하다보니 작은 서점도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손님을 붙잡기 어렵다"고 말했다.

청학서점 삼문점은 1961년 문을 연 밀양의 오래된 서점이다. 신찬섭 대표 부부는 청학서점 삼문점과 밀고점을 운영하고, 이곳에서 독서모임과 서평집 발간, 작가 초청 프로그램을 이어 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청학서점을 비롯해 밀양 지역서점 대표들과 책방 생태계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최휘영 장관은 14일 청학서점 삼문점에서 학교 도서 구매, 도서정가제, 베스트셀러 물량 배분 등 현장 의견을 들었다. 간담회는 이날 오후 청학서점 삼문점 안 북카페 2층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문체부 관계자와 경남도·밀양시 관계자, 밀양 지역서점 대표들이 참석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청학서점을 비롯해 밀양 지역서점 대표들과 책방 생태계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최휘영 장관은 14일 청학서점 삼문점에서 학교 도서 구매, 도서정가제, 베스트셀러 물량 배분 등 현장 의견을 들었다.
작은 서점엔 보호보다 압박된 도서정가제…화제작이 나와봐야 지역서점은 빈 매대뿐

신찬섭 대표는 "작은 서점도 이를 따라가지 않으면 손님을 붙잡기 어렵다"며 "청학서점도 10년 전부터 15% 할인을 해 왔지만, 지난해부터는 경영 부담이 커져 할인율을 10%로 낮췄다"고 덧붙였다.

공급 조건과 할인율의 간극도 문제로 제기됐다. 신 대표는 "지역서점이 공급받는 책 상당수가 75% 조건인데, 여기서 15%를 할인하면 실제로 남는 돈은 많아야 8%, 적으면 3% 수준"이라며 "여기에 물류비와 인건비를 빼면 정상적인 영업이 어렵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베스트셀러 배분 문제도 꺼냈다. 한강 작가나 유명 정치인처럼 큰 화제가 되는 책이 나오면 지역서점에는 물량이 제때 내려오지 않는 경우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그는 언론에는 책이 서점에 쌓인 장면이 나오지만, 정작 지역 책방은 2주 동안 한 권도 받지 못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후 책이 조금씩 들어오더라도 독자 수요가 온라인이나 대형 유통망으로 빠져나간 뒤라는 설명이다.

신 대표는 "지역서점을 살리려고 일부러 찾아온 손님에게 책이 없다고 말해야 하는 상황이 가장 어렵다"며 "손님이 왜 동네서점에는 책이 없느냐고 물으면 지역서점은 다시 경쟁력 없는 공간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유통 영역이라는 한계를 알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베스트셀러가 지역서점 방문 계기가 아니라 지역서점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바뀐다고 봤다.

최 장관은 베스트셀러 물량이 지역 책방에 닿지 않을 때 생기는 문제를 살펴보겠다고 답했다. 최 장관은 "갑자기 뜨는 책이 특정 유통 단계에 먼저 쏠리면 작은 책방에는 책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책이 공공재 성격을 일부 갖는 만큼 여러 지역에서 독자가 책을 접할 방법을 검토하고, 균형 배정이 가능한지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청학서점을 비롯해 밀양 지역서점 대표들과 책방 생태계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최휘영 장관은 14일 청학서점 삼문점에서 학교 도서 구매, 도서정가제, 베스트셀러 물량 배분 등 현장 의견을 들었다.
학교 구매, 도서관 밖 물량은 온라인으로…방문객 감소·인증 혼선·창업 지원도 과제

신관섭 동아서점 대표는 학교 도서 구매가 지역서점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서관용 책은 마크 작업 때문에 지역서점에 맡겨지는 경우가 있지만, 학교가 일반적으로 구입하는 책 상당수는 인터넷 업체로 빠진다"고 설명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온라인 구매가 결제 절차상 편하다는 이유를 든다고 했다. 신 대표는 학교 일반 도서 구매까지 지역 안에서 이뤄져야 지역서점이 안정적인 운영 기반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찬희 미리벌서점 대표는 학교도서관 납품보다 매장을 찾는 손님의 감소가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이후 소비가 온라인 중심으로 옮겨가면서 오프라인 손님이 거의 사라졌고, 사람을 다시 서점으로 오게 할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미라 청학서점 밀고점 대표는 지역서점 인증 과정의 혼선을 말했다. 그는 실제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서점이 인증을 받는 사례를 봤다며, 지자체와 도서관이 현장을 확인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혜승 동행서림 대표는 새 서점 창업 과정에서 필요한 안내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점용 시스템, 포스 설치, 납품 제도 등을 창업자가 혼자 찾아야 했다며 창업 전 단계부터 이어지는 상담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정훈 밀양시장 권한대행은 밀양시가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로 공공도서관의 지역서점 우선 구매 근거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밀양시립도서관은 북 칸타타, 동네서점 바로대출 서비스, 가을 책 축제 등 서점 연계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최 장관은 인증 주체와 방식에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고 말했다. 관내에서 의미 있게 운영되는 동네책방이 제대로 지원받는 체계를 만드는 일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신혜승 대표는 독립서점들이 제도권 밖에 놓이기 쉽다는 점도 짚었다. 동행서림은 올해 밀양시 남천강변로에 문을 연 독립서점으로, 인문·문학·철학·역사 중심의 책과 지역 출신 작가 작품 전시, 필사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최 장관은 새 책방이 쉽게 진입할 여건을 함께 고민하겠다고 했다. 지역 서점들이 단순 판매 공간을 넘어 도시재생의 크리에이터 역할까지 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최 장관은 14일부터 15일까지 경남 밀양에서 지역 문화와 관광 정책 현장을 점검한다. 청학서점 삼문점을 시작으로 공연장, 전통시장, 관광지를 찾아 관계자 의견을 듣고 지원 방안을 살핀다.

이번 일정에는 밀양아리랑 공연, 복합문화공간 '볕뉘', 밀양 아리랑시장, 영남루와 밀양읍성 방문이 포함됐다. 문체부는 밀양에서 문화도시, 지역사랑 휴가 지원제인 '반값여행', 관광두레 사업의 운영 상황도 함께 확인한다.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