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납치된 채진규와 스스로 들어간 이명복…4·3 이야기
[신간]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지난 30년 동안 4·3을 추적해 온 저자 허호준이 사건을 구조로 이해하는 단계를 넘어 개인의 삶 속에서 4·3을 체험하게 하는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를 펴냈다. 주인공 채진규와 이명복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가며 국가폭력이 한 인간의 선택과 생존을 어떻게 바꾸는지 드러낸다.
저자는 납치되어 산으로 간 채진규와 스스로 산으로 들어간 이명복의 삶을 교차해 놓는다. 출발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같은 시대, 같은 폭력의 구조 속으로 밀려들어 간다. 허호준은 그 엇갈린 궤적을 따라가며 4·3을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로 다시 읽는다.
저자는 '누가 옳았는가'보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앞세운다. 독자는 사건 바깥에서 설명을 듣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두 사람의 공포와 생존 문제를 따라가며 4·3의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출발점은 1992년 다랑쉬굴 유해 발견이다. 저자는 이 장면을 진실이 세상 밖으로 나온 순간이자 다시 봉인된 순간으로 본다. 유해가 서둘러 화장되고 바다에 뿌려진 과정을 살펴보면 4·3은 과거 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전작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와 나란히 읽힐 때 결이 더 또렷해진다. 전작이 구조와 흐름을 정리했다면 이번 책은 삶과 감정의 밀도로 독자를 끌어당긴다. 아울러 함께 나온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가 기록으로 실체를 확인하는 책이라면 이 책은 체험의 온도로 4·3을 복기하게 한다.
전체 구성은 '얼어붙은 노을'에서 '옅은 목소리'까지 14개 장면을 잇는다. 눈보라, 바다, 하산, 살얼음판 같은 말들이 반복되며 시대의 공기와 인간의 떨림을 함께 끌어낸다. 구조보다 감각을 앞세운 이 배치는 기억의 문을 두드리는 르포의 결을 만든다.
저자 허호준은 1989년부터 2025년까지 언론사 기자로 4·3의 진실을 추적해 왔다. 제주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일본 리쓰메이칸대 코리아연구센터 객원연구원으로 연구와 저술을 이어가고 있다.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사건을 다시 설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구조로 이해한 역사를 인간의 얼굴과 목소리로 되돌려 놓는다. 4·3을 처음 접한 독자에게도,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독자에게도 기억의 자리를 다시 묻는 책이다.
△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 허호준 지음/ 혜화1117/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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