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은 감정보다 먼저 온다…계간 문학과사회 봄호
[신간] '문학과사회 2026년 봄 153호'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느끼는 아주 빠르고 생생한 반응인 정동(Affect)을 주제로 계간 '문학과사회' 2026년 봄호에 다양한 글이 담겼다. 별책에는 소진, 불안, 죽음, 질투, 알고리즘 등 동시대의 감각을 정동이라는 렌즈로 풀어낸 글 8편을 묶었다.
정동은 감정처럼 이름이 붙기 전, 자극을 받은 몸이 먼저 흔들리는 느낌에 가깝다. 놀라기 전 심장이 먼저 뛰고, 긴장에 어깨가 먼저 굳는 순간의 강도다. 이번 봄호는 그 '먼저 도착하는 느낌'이 개인의 일상과 사회의 기류를 어떻게 바꾸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정동을 잘 짚어낸 대표적 현상으로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꼽았다. 이 영화를 관람한 뒤 세조의 무덤인 광릉과 한명회의 묘에 비난 섞인 리뷰를 남기고, 단종의 무덤인 장릉에 추모를 전하는 움직임이 온라인에서 확산됐다. 결말을 아는 역사물이라는 조건이 오히려 공유된 기억과 애도의 감각을 증폭시켰다고 편집동인은 분석했다.
김남이는 정동을 '명명되기 이전'의 신체 경험으로 두고, 후기 자본주의 문화가 그 잠재성을 어떻게 착취하고 소진하는지 짚는다. 그는 수치(shame)를 무감각을 다시 감각하게 만드는 정동으로 재해석하며, 글쓰기가 소진된 정동을 되살리는 실천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서동진은 '공포·탐욕' 같은 정동적 색조로 시장을 계량하는 지표에서 출발해, 오늘의 세계가 합리의 법칙보다 강도의 흐름으로 설명되는 장면을 따라간다. 서사화되지 못한 경험이 신체적 강도로 남는 시대에 정동과 서사를 함께 붙잡아야 한다는 요청이 글의 중심을 이룬다.
소유정은 동시대의 지배적 정동을 불안으로 놓고, 오컬트·괴담·으스스함의 유행을 '불안을 다루는 장치'로 읽는다. 이소는 구덩이, 동물 이미지, 수직의 시선을 통해 불평등의 재현이 더는 관망이 아닌 무력감의 정동으로 바뀌는 순간을 포착한다.
김병규는 한국 영화에 반복되는 '남성 권력자의 벌거벗은 하반신' 이미지를 통해 권력, 수치, 굴욕, 도취가 뒤엉킨 정동을 분석한다. 이희우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조건이 관심 자원을 둘러싼 경쟁으로 굽어지며 질투를 격화시키는 역설을 따라간다.
신현우는 인공지능(AI)과 알고리즘 환경을 '만물정량평가'의 체제로 진단하고, 정동이 수치화·환산되는 방식 자체를 하나의 전선으로 제시한다. 홍성희는 '객관'과 '이유'를 향한 집착이 만들어내는 정동을 살피며, 드론 영상과 전쟁 보도에서 안전한 위치성의 믿음이 공감의 형태를 바꾸는 장면에 주목한다.
본권은 시와 소설, 리뷰로 봄호의 결을 확장한다. 남진우, 문태준, 이수명, 이민하, 황인찬 등 시인들의 신작과 김금희, 권혜영, 권희진의 소설이 실렸다.
△ 문학과사회 2026년 봄 153호/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지음/ 문학과지성사/ 1만8000원
art@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