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을 막지 못했더라면…정보라의 불온한 상상력
[신간] '처단'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저주토끼'로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소설가 정보라가 12·3을 막지 못했을 때 벌어질 상황을 그려낸 소설 '처단'을 내놨다.
이 소설은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된 뒤에도 허물어진 일상과 불안의 시간을 담담하게 복기한다. 아울러 2024년 12월 대구의 병원에 머물며 남편의 입원과 수술을 겪은 시간이 소설의 바탕이다.
소설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순간과 그 전후를 따라간다. 무장 병력이 국회를 비롯한 헌법기관을 무력화하고 시민을 공격하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6시간 만에 해제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처가 남는다.
정보라는 사건을 장르의 문법으로 한 발 더 밀어붙인다. 소설은 "이것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다"로 시작해 기록 바깥의 공포를 끌어올린다. 현실에서 한 줄을 비튼 자리에서 낭떠러지가 열린다고 설정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노동조합원인 '그녀'와 '그녀의 아내'가 있다. 병원과 광장, 행진이 교차하며 일상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보여 준다. 두 사람의 걸음은 공포를 피하는 도주가 아니라 삶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선택으로 이어진다.
소설은 약자와 소수층이 먼저 위험해지는 순간을 전면에 둔다. 이주노동자 '알', 학교 밖 성소수자 청소년 '단단' 같은 인물이 등장해 이름과 몸이 쉽게 삭제되는 현실을 마주한다. 불안은 거창한 구호보다 이동과 돌봄, 생계의 균열로 구체화한다.
병원은 돌봄의 현장이자 배제의 규칙이 드러나는 장소로 그려진다. '보호자' 같은 말이 누군가를 법과 서류의 틀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이 서사의 긴장을 만든다. 간호사 '양'은 병원 노동의 무게와 함께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내는 존재로 놓인다.
현실의 균열은 끝내 초현실로 치닫는다. "죽은 자들이 일어섰다"는 문장이 등장하며 죽은 자들이 반란군이 남긴 총탄과 무기를 들고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공포는 폭력의 과시가 아니라 느리고 끈질긴 행진으로 형상화된다.
'작가의 말'에서 정보라는 "미래가 없는, 혹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을 쓰고 싶었다"고 밝혔다.
△ '처단'/ 정보라 지음/ 상상스퀘어/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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