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와 네모가 만든 우리의 삶……몸에 맞춘 형태의 역사

사물·공간·문화의'모양'을 몸과 감각의 언어로 읽어낸 16가지 관찰
[신간]'형태의 문화사'

[신간]'형태의 문화사'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형태는 우연이 아니다. 책은 손·발·눈 같은 우리 몸이 사물과 공간의 모양을 어떻게 만들고, 다시 그 형태가 우리의 습관과 사회를 어떻게 길들였는지 사례로 풀어낸다. 동전과 지폐에서 온돌과 현관, 스마트폰과 개방형 사무실까지, 낯익은 모양들 속에 숨은 규칙도 드러낸다.

책은 인간에게서 출발한다. 손가락으로 쥐기 편한 크기, 돌리기 쉬운 지름, 한 손으로 감아쥘 때의 느낌 같은 구체적 조건이 공·손잡이·문고리의 모양을 결정한다. 둥근 동전은 어느 방향으로도 걸리지 않아 주머니를 상하게 하지 않고, 지폐는 쌓고 접고 넘기기 쉬운 직사각형을 택한다. 이런 '생활의 물리학'이 사물의 표준을 만든다.

눈의 구조는 빛과 화면의 규칙을 바꾼다. 양쪽 눈이 동시에 또렷이 보는 양안시 영역은 가로보다 세로로 더 길다. 그래서 인물에 집중하는 초상화나 세로 숏폼 영상이 자연스럽다. 눈동자 색·안구 크기 같은 생물학적 차이도 조명과 실내 밝기 취향을 갈라놓는다. 낮은 조도에서도 지장이 적은 집이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 안의 형태는 생활을 재조직한다. 온돌·마루 같은 바닥 문화는 사람을 앉히고 눕힌다. 현관이라는 낮은 바닥은 '밖의 먼지'와' 안의 청결'을 가르는 심리적 경계가 된다. 신발을 벗는 습관, 실내 슬리퍼의 용도, 안팎의 명확한 구분은 바닥이라는 형태가 만든 생활 규칙이다.

다리는 길과 도시의 질서를 만든다. 종이에 그린 직선 격자는 권력의 효율을 반영한다. 반면 오래 걷다 보면 몸은 자연스러운 곡선을 남긴다. 격자를 비껴 가로지르는 대각선의 큰길은 발이 만든 오랜 궤적이다. 직선과 곡선의 공존은 도시에 겹겹의 시간을 남긴다.

크기와 스케일의 기준도 몸에 닿아 있다. 문고리 지름은 야구공 7.4센티미터보다 작고, 골프공 4.3센티미터보다 커야 잡기 편하다. 달리기·수영처럼 운동에서 무게중심 위치와 팔다리 비율이 바뀌면 에너지의 흐름이 달라진다. 몸의 치수와 물리 법칙이 '잘 되는 형태'를 가른다.

현대의 대표적 물건인 스마트폰은 '완벽한 봉인'을 지향한다. 버튼과 슬롯을 최소화하고 내부를 못 열게 만든 매끈한 덩어리. 만져지는 곳이 줄어들수록 우리는 화면을 탭·스와이프하는 단순 동작에 익숙해진다. 기술이 몸의 기능을 대신할수록 손은 섬세한 조작에서 멀어지고, 형태는 우리의 동작을 더 단순하게 길들인다.

사무공간의 형태는 권력과 시선을 드러낸다. 개방형 사무실은 협업과 소통을 표방하지만, 동시에 항상 노출되는 감시의 시선을 낳는다. 누구에게 유리하고 누구에게 불리한지, 형태는 중립이 아니다. 형태는 언제나 누군가의 몸에 맞춰졌고, 다른 몸을 예외로 밀어낼 수도 있다.

저자는 표준과 평균이 누구를 위해 정해졌는지 묻는다. 우리가 길들여진 편안함을 기본값으로 놓는 순간, 다른 몸과 다른 삶은 주변부로 밀린다. '형태의 문화사'가 제안하는 읽기는 단순한 교양이 아니라 실천이다. 우리가 무엇을 계속 손에 쥐고, 무엇을 기계에 맡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 형태의 문화사/ 서경욱 지음/ 한길사/ 2만 5000원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