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매일 25권씩 냈다고? 출판계 뒤흔드는 'AI 저작물'에 대한 '두 시선'

시간·비용의 획기적 단축 vs 콘텐츠 범람에 통찰력·감성 부재
AI 저작물에 관한 법적·윤리적 규범 마련에는 한목소리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인공지능(AI)이 출판계를 뒤흔들고 있다. 소설, 에세이, 실용서, 심지어 동화책까지 AI가 단시간에 척척 써내는 시대가 도래하며, 전통적인 저작 및 출판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눈앞에 와 있다.

"책 쓰는 게 가장 쉬웠다"는 농담이 현실이 됐다. 실제로 교보문고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1년에 9000여 권'의 책을 펴낸 출판사가 등장했다. 하루 동안 약 25씩 권의 책을 1년간 매일 출간한 셈이다. 출판 시장은 새로운 가능성과 복잡한 윤리적·법적 문제 사이에서 큰 혼란을 겪고 있다.

AI를 활용한 출판은 생산성의 혁신이라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AI의 저작물이라는 윤리적 문제를 비롯해 출판시장 교란, 콘텐츠 범람, 저작권 침해 등 많은 심각한 문제점을 동시에 안고 있다.

인간을 대신하는 AI 저자…'명령' 하나면 책 한 권 뚝딱

최근 몇 년간 AI의 발전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챗GPT'나 '제미나이'와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의 발전으로 AI의 글쓰기 능력은 인간 작가의 수준에 근접하거나 특정 분야에서는 능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AI가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일관성 있는 문체와 논리 구조를 갖춘 글을 스스로 생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명령만으로 특정 스타일이나 주제에 맞춰 수백 페이지의 원고를 단 몇 시간 만에 완성한다.

현재 아마존 킨들 스토어에서 AI가 표지 디자인부터 내용 작성까지 도맡은 전자책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가이드북, 요약본, 자기계발서, 동화책 등 정형화된 구조와 정보 전달이 핵심인 분야에서 AI 저작물은 두각을 나타낸다.

챗GPT를 활용해 만든 실용서를 빠르게 출간하거나, 프롬프트 입력만으로 다양한 캐릭터와 줄거리를 갖춘 유아용 그림책을 수십 권씩 만들어내는 'AI 작가'들이 등장했다. 심지어 AI가 인간 작가의 문체를 학습해 후속작을 써내거나, 기존의 고전을 현대적인 관점에서 각색하는 작업도 활발하다.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 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AI 저작물, 기존 출판과 근본적인 차이는…시간·비용의 획기적 단축

기존 출판 시스템의 경우, 장착 주체는 물론 인간이다. 창작 속도는 수개월에서 수년이 소요된다. 또한 인세·편집·교정·디자인·인쇄·유통 등 복잡한 비용 구조를 가진다. 하지만 인간의 생각, 시간, 노동력이 투입된 유한한 저작물로서 희소성이 크며, 작가의 고유한 사상과 예술성에 무게감이 존재한다.

반면에 AI 저작물 기반 시스템은 방대한 데이터 학습 및 알고리즘을 갖춘 AI모델이 콘텐츠를 생성한다. 완성 속도는 수 시간에서 기껏해야 2, 3일이다. 집필에서 편집 디자인까지 완성되기 때문에 제작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 전자책의 경우 낮은 비용으로 무한 복제 및 대량 생산 가능하다.

AI 저작물은 제작 과정에서 전통적인 출판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간과 비용의 획기적인 단축이다.

인천에서 1인 출판을 운영하며 연간 5~10권의 책을 출간하는 A 씨는 "최근 출판 시장 불황 속에서 계속 수익을 내야 하는 1인 출판이나 소규모 출판사로서는 솔깃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며 "명령만 잘 내리면 1인 출판이라도 저비용으로 한 달에 5권이 넘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서밋 2025’ 현장 /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AI 저작물에 시장 동향은…해법 제시 없이 관망 중

시장의 반응은 양분된다. 일부 제작자는 재빨리 움직여 AI를 활용하며 수십 권의 책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대형 출판사들은 AI 저작물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윤리 규범이 없는 상황에서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소비자의 견해 역시 복잡하다. 실용적인 정보를 빠르게 얻고자 하는 독자들은 AI 저작물의 효율성과 저렴한 가격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소설이나 에세이처럼 작가의 통찰과 감성을 중시하는 분야의 독자들은 진정성 부재를 이유로 AI 저작물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아마존 등 주요 플랫폼은 AI 생성 콘텐츠에 대한 고지 의무를 강화하는 등 규제 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쏟아지는 물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는 국내 서점가도 마찬가지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실제로 한 작가의 이름으로 하루에 전자책이 10권 이상 등록된 사례도 있다"며 "굉장히 어려운 문제지만, 현재 AI가 썼다는 이유만으로 출판을 못하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서 한 시민이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모습 / 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AI 저작물에 대한 대응 방안은…법적·윤리적 강령 마련 시급

AI 저작물에 대한 출판계의 이렇다 할 대응은 아직 없다. 다만 AI 저작물에 법적, 윤리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판 윤리 강령에 AI 관련 조항을 신설해 저작권 문제를 예방해야 한다는 곳이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현재 출판계는 해법을 제시하는 단계는 아니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처럼 아무런 원칙도 규제도 없는 상태에서 활용되는 AI 저작물은 인류 문명의 지식 생산과 유통 시스템 전체를 본질적으로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른 시각의 견해도 있다. 국립한국문학관 관장인 문정희 시인은 "AI의 영향력이 무시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크게 증폭되고 있다"며 "결국은 AI도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간의 명령에 꽤 명쾌한 답을 내놓는 AI를 잘 보완하고 활용하면 인간의 창의력은 오히려 힘을 받을 수 있고, 이는 결국 출판계에도 보탬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AI 저작물에 대한 정확한 표시 등 윤리 규범이 반드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