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메일 있으세요"…페이팔 개발자가 설명하는 스테이블코인
[신간]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이 뭔데?'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퀀트 출신 블록체인 개발자 권용진과 핀테크 디자이너 권수경이 스테이블코인의 본질과 쓰임, 기회와 리스크를 입체적으로 해부한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이 뭔데?'를 펴냈다.
공저자들은 이메일 보내듯 돈이 오가는 시대, 지갑 주소가 일상의 인사말이 되는 미래를 구체적 시나리오로 그려 보인다.
저자들이 우리가 익숙하게 믿어온 '소유'의 허상을 말한다. 은행 계좌의 숫자, 앱 속 포인트와 캐시는 대부분 특정 기업·기관이 설계한 폐쇄형 네트워크 안에서만 통용되는 사용권일 뿐이다. 왜냐하면 규칙이 바뀌면 접근이 제한되고, 때로는 계정이 동결되기 때문이다.
이런 불편을 '금융 주권'의 관점에서 다시 묻는다. 누구의 허락 없이도 내가 나의 자산을 통제할 수 있어야 진짜 소유라고. 바로 그 균열 지점에 스테이블코인이 들어온다.
'이더리움'은 결국 '금융 인터넷'이다. 주주도 CEO도, 심지어 전원을 끌 '한 사람'도 없는 공개 네트워크에서, 코드는 계약이 되고, 자산은 전 세계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표현된다.
예컨대 케냐의 한 청년이 소액대출 서비스를 만들려면 기존 제도권에서는 은행 제휴·서버 구축·각국 규제 통과라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관문을 넘어야 했다. 하지만 이더리움 위에서는 스마트 컨트랙트 한 장으로 글로벌 서비스를 열 수 있다. 이 인프라 위에 '가격이 안정된 토큰'인 스테이블코인이 올라타며, 본격적인 전송·결제·정산의 혁신이 시작된다.
가장 설득력 있는 변화는 '돈의 이메일화'다. 국제 송금이 3~5일, 수수료 3~7% 걸리는 세계가 오래전 표준이었다면, 지금은 스테이블코인 주소 하나만 알면 된다. 붙여넣고 전송을 누르면 10분 안에 도착하고, 수수료는 1달러 수준이다. 주말·심야 구분 없이 365일 24시간 작동하며, 은행 없는 17억 명에게 스마트폰 하나만으로 '처음의 금융'을 연다.
레바논·터키·아르헨티나처럼 은행 기능이 사실상 멈춘 국가에서, 전쟁 속 우크라이나에서, 해외송금을 해야 하는 이주노동자에게 이 기능은 이미 '대체 불가'에 가깝다. 이메일 주소를 묻듯 "지갑 주소 있으세요?"가 자연스러운 인사말이 되는 풍경은 더 이상 공상이 아니다.
3부는 '일상화'의 장면들을 바닥까지 끌고 내려온다. 월급은 한 달에 한 번 '일괄 정산'하는 것이 아니라, 일한 시간만큼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된다. 오늘 8시간 근무했다면 퇴근과 동시에 그만큼의 급여가 지갑에 들어온다. 콘텐츠는 30초만 듣고 5원을 내는 초미세 결제가 가능해지고, 동네 빵집에 1만 원을 투자해 매일매일 매출 일부를 배당받는 '마이크로 오너십'도 현실이 된다. '계주가 도망갈 수 없는 계모임', 자동 상환·자동 담보청산이 작동하는 대출, 임대차보증금 분쟁을 사전에 차단하는 투명 예치까지, '코드로 쓰인 약속'이 돈의 동선을 재설계한다.
또 하나의 축은 '토큰화'다. 강남의 빌딩을 1만 원 단위로 쪼개 공동 소유하고, 주차권·에너지·창작물의 미래 수익을 일정 비율로 미리 판매하는 구조는 거대한 투자은행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통 인프라 위에서, 누구나 발행하고 거래할 수 있는 증권형 토큰 경제가 열린다. 앱스토어가 전화기의 본질을 바꾼 것처럼, '금융 앱스토어'는 은행이 만들어 팔던 몇 가지 표준 상품의 시대를 밀어낸다.
물론 '빛'만은 아니다. 테라·루나가 남긴 교훈처럼, 알고리즘만으로 가격 안정성을 설계한다는 발상은 자주 신화에 가깝다. 스테이블코인 송금이 값싸고 빠르더라도, 특정 시기에는 네트워크 혼잡으로 수수료가 치솟는다. 모든 거래가 영구히 기록되는 투명성은 '좋은 감시'이자 동시에 '지나친 노출'이다.
실제로 어떤 스타트업은 급여 일부를 USDC로 지급했다가 블록 탐색기에서 직원별 연봉과 성과급이 고스란히 '오픈 데이터'가 되어 조직 갈등을 자초했다. 코드 한 줄의 실수로 전 재산을 날릴 수 있는 '자가보관'의 냉혹함, 국제범죄·자금세탁에 악용되는 그림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을 우회하는 '보이지 않는 중앙은행'의 탄생 가능성까지, 4부는 장점과 리스크를 같은 무게로 놓는다.
국내 독자에게 특히 유익한 대목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이다. 저자는 송금 편의나 금융 주권의 차원을 넘어, '글로벌 경쟁 구도에서 한국이 어떤 차별화를 할 것인가'의 질문으로 끌어올린다. 제도권 편입의 속도와 방식, CBDC와의 관계, 상업은행·빅테크·지갑기업의 역할 분담까지, 저자들은 '답안지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냉정한 전망과 함께 '한국이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의 숙제를 남긴다.
저자 권용진은 뱅크오브아메리카·타워리서치의 퀀트를 거쳐 팍소스에서 페이팔 스테이블코인 PYUSD의 개발과 런칭을 주도했다. 현재는 서클경제연구소와 시장 미시구조를 연구한다. 권수경은 웹3·핀테크 현장을 횡단한 인터랙션 디자이너다.
△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이 뭔데?/ 권용진·권수경 지음/ 어포인트/ 1만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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