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17m 병풍책으로 되살렸다…숲과 사람들, 77년 전의 기억

[신간] '복받친밭 이야기'

[신간] '복받친밭 이야기'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김영화의 '복받친밭 이야기'는 제주 4·3 당시 사람들이 숨어 지냈던 북받친밭 숲을 병풍책으로 되살린 작품이다. 저자는 현재의 숲과 과거의 흔적을 함께 담아 기억과 기록의 의미를 전한다.

제주의 숲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다. 사람들의 기억이 쌓이고, 역사의 고통이 서린 장소다. '복받친밭 이야기'는 1948년 12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대토벌의 광풍을 피해 중산간 마을 사람들이 몸을 숨겼던 북받친밭을 무대로 한다. 이곳은 제주공동체의 마지막 장두 이덕구가 최후를 맞은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작가 김영화는 2023년 겨울부터 2024년 초여름까지 7개월간 수십 차례 현장을 찾고, 작업실에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세필 붓으로 숲을 옮겨 그렸다. 그는 3면 벽에 온장 한지를 붙이고 하루 16시간씩, 무려 130개의 붓펜을 닳게 하며 높이 2.7미터, 길이 17미터의 벽화를 완성했다.

책은 병풍 제본이라는 형식을 택했다. 앞면에는 눈 덮인 겨울에서 초여름까지 이어지는 오늘의 숲 풍경이, 뒷면에는 4·3 당시 피란민들의 삶과 죽음이 시간순으로 담겼다.

까마귀, 복수초, 팥배나무 같은 자연의 장면과 함께,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증언이 기록된다. 작가는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 증언과 풍경 그대로를 옮겨 독자가 스스로 해석할 공간을 열어두었다.

책에는 숲의 고요와 함께 숨죽여 살던 이들의 두려움, 그리고 봄을 기다리던 간절한 마음이 겹쳐 있다. 속삭임은 숲을 덮은 공포와 생존의 몸짓을 그대로 전한다. 동시에 병풍책의 형식은 죽은 자와 산 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치가 된다.

제주의 그림책 작가 김영화는 앞서 '큰할망이 있었어'와 '우리가 봄이 되는 날'로 한라산과 제주 공동체 이야기를 담아온 바 있다.

△ 복받친밭 이야기/ 김영화 글·그림/ 이야기꽃/ 3만 2000원

art@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