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행우주로 이동이 가능해진 세상의 특권과 불평등을 파고들다

[신간] '세상의 경계에서'

'세상의 경계에서'(황금가지 제공)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380개의 지구 가운데 무려 372개의 지구에서 나는 죽었다. 아니, 이제는 373개로 늘어났다."

우리 세계와 유사한 다른 우주로 건너갈 수 있는 기술이 생긴다면? 평행우주로의 이동이 가능해진 세상을 무대로 계급과 정체성의 문제를 파고든 공상과학소설(SF)이 출간됐다.

최고의 데뷔소설에 수여되는 콤턴 크룩상을 수상하며 저자인 미카이아 존슨을 일약 SF 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게 한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차원 이동에는 여타 멀티버스물과 비교해 색다른 한 가지 설정이 있다. 바로 다른 세계의 또 다른 자신이 이미 '죽어 있어야만' 한다는 전제 조건이다.

주인공인 카라는 빈곤한 도시 출신의 유색인 여성이기에 여러 지구에서 높은 확률로 사망한 최적의 '횡단자'다. 이 책은 이 복잡다단한 인물의 비밀과 다중우주에 얽힌 음모를 반전에 반전을 거듭해 드러내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전개를 선보인다.

횡단자들은 세계를 넘나들 때 별이 빛나는 암흑의 공간에서 느끼는 감각을 '은야메'라는 아프리카 여신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 감각은 육체를 짜부라뜨릴 정도의 위험한 압력일 수도 있지만 횡단자를 매료시키는 경이이기도 하며, '와일리시티'와 '애시타운'이라는 두 세계의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카라가 품는 양가감정과도 유사하다.

약육강식의 논리와 잔혹한 황제가 지배하는 애시타운을 벗어나, 10년간 거주하면 얻을 수 있는 와일리시티 시민권과 엘리트 출신인 상관 델의 감정을 6년째 갈구해 왔지만, 다른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와 표백된 듯한 와일리시티 특유의 문화 때문에 때로는 먼지가 뒤덮은 고향의 냄새를 어쩔 수 없이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생존 하나만을 목표로 더 높은 곳에 편입되기 위해 달려온 카라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던 직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변화가 닥쳐오는 가운데 새로운 기로에 서게 된다. 과거에 저지른 과실과 현재의 진정한 소망에 대하여 반추하게 하는 그 모험은 다중우주를 살아가든, 살아가지 않든 중요한 것은 '선택'의 문제라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 세상의 경계에서/ 미카이아 존슨 글/ 이정아 옮김/ 황금가지/ 1만7000원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