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바람벽에 쓸쓸한 것만이'…윤동주가 사랑한 백석

[신간]백석 작품 선집 '흰 바람벽이 있어'

백석 작품 선집 '흰 바람벽이 있어'.(새움 제공)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쓰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흰 바람벽이 있어' 중에서)

수려한 외모에 큰 키, 곱슬곱슬한 장발, 말쑥한 양복차림으로 대표되는 '모던보이' 백석(본명 백기행)의 작품 선집 '흰 바람벽이 있어'가 출간됐다.

백석의 시집 '사슴'(1936)에 실린 시 전부와 신문과 잡지 등에 실린 백석의 작품들을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로 나눠 발표된 순서대로 선별해 실었다. 여기에 백석이 남긴 수필과 서간문, 북에서 발표했던 번역시들도 일부 함께 수록했다.

윤동주는 시집 '사슴'을 필사해서 어디든 지니고 다닐 정도로 백석의 시를 좋아했다. 백석의 시 33편을 담은 사슴은 당시 100부만 출간돼 시집을 사지 못한 윤동주는 시집을 빌려 밤새 필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백석은 많은 시인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그의 시에는 쓸쓸함과 그리움과 자책과 슬픔이 깊이 배어 있다.

그의 시는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감수성을 지니고 있음은 물론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따뜻하고 향토적인 분위기를 품고 있다.

백석은 젊은 날 나라 방방곡곡을 누비고 만주 등을 여행하면서 보고 겪은 것들을 시에 녹였다. 일제 치하에서 피폐해진 사람들의 모습과 이들의 서글픈 사연을 그의 시 속에서 만날 수 있다.

백석은 1912년 태어나 근래인 1990년대까지 살았지만 우리에게 그의 시가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남한에서 시집으로 묶어낸 책이 '사슴' 한 권뿐인데다 해방 이후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에 정착해 월북 시인으로 지명돼 남한에서 금서로 취급됐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백석은 창작 대신 번역활동에 주력했으며 아동문학으로 눈을 돌려 '집게네 네 형제'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사회주의 문학의 정치성을 비판하다 1959년 국영협동농장으로 쫓겨나 '양치기'로 일했으며 1962년 절필한 뒤 1996년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지음 / 새움 펴냄 / 1만2000원

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