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화두'까지 전후 최대 작가 '최인훈'(종합)
대전 병기창에서 백지에 수기로 '광장' 집필
1994년 1000매 '화두' 발표…50년 넘게 집필 전념
- 여태경 기자
(서울=뉴스1) 여태경 기자 = '전후 최대의 작가'로 평가받는 최인훈이 23일 지병인 대장암으로 별세했다.
1934년 두만강 변의 국경도시 함북 회령에서 태어난 최인훈은 한국 근현대사의 희로애락과 함께 한 작가였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식민지 교육을 경험하고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피란수도 부산행 해군함정에 몸을 실었다. 1952년 부산에 내려와 있던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해 이듬해 대학을 따라 올라가 서울에 정착한다.
그는 피란수도 부산에서 대학 재학 중에 작가 자신의 첫 소설에 해당하는 '두만강'을 집필하고, 1959년 군복무 중에 '자유문학' 10월호와 12월호에 단편 'GREY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발표하며 등단, 본격적인 문단활동을 시작한다.
1960년 한국 현대 문학사의 기념비적 작품인 '광장'을 대전 병기창에서 백지에 수기로 집필, '새벽'지 11월호에 발표한다. 발표 당시 원고지 600매 분량의 중편소설이었던 '광장'은 다음해 800매로 늘려 단행본 '광장'(정향사)으로 출간됐다. 신구사와 민음사, 1976년 '최인훈 전집'판(문학과지성사)으로 옮겨와 개작에 가까운 대폭적인 수정과 교정을 거친 다섯번째 판으로 소개됐다. 이후에도 그는 꾸준한 증쇄와 개정 작업을 거듭할 정도로 이 작품에 애정을 보였다.
최인훈은 4·19 혁명이 일어난 해인 1960년 새벽지 11월호에 '광장'을 발표하면서 서문에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 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 저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문학평론가 김현은 1976년 광장 전집판 해설에서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이었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1994년 러시아 여행 후 20세기 세계사의 격변 속에 맞물려온 한반도의 운명, 그 역정을 고독하게 종단한 한 개인의 이야기이자 보편적인 20세기인의 삶과 고뇌를 담아낸 대작 '화두'(민음사)를 발표했다. 그는 1000매에 이르는 '화두'를 발표하며 "내가 쓰고 싶은 것은 다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인훈은 평생 "내 눈이 본 것을 '시대의 서기'로서 언어로 옮겨왔을 뿐"이며 스스로를 "미학적 내구성이 강한 20세기 화가 유파"에 비유했다.
그는 '화두' 발표 이후 10여년의 침묵을 깨고 2003년 비망록이자 서간체 형식을 띤 소설 '바다의 편지'(황해문화)를 발표할 만큼 50년 넘게 글쓰기에만 매진했다.
광장과 화두 외에도 전망이 닫힌 시대의 존재론적 고뇌를 그린 '회색인',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면서 파격적 서사 실험을 보인 '서유기', 신식민지적 현실의 위기의식을 풍자소설의 기법으로 표현한 '총독의 소리' 연작, 실험적 패러디 기법으로 고전을 새롭게 해석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를 비롯한 우리말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고대설화가 품은 한국적 정서를 현대적 문맥으로 재해석한 숱한 희곡 작품들을 남겼다.
한국 현대 소설사에 큰 족적을 남긴 최인훈의 작품들은 인류 보편의 기억과 상처를 증언하고 기록하는 데 있어 단순한 사건의 재현과 나열이라는 기존의 소설 문법에서 벗어나 시대를 앞선 다양한 서사적 장치와 모더니즘의 실험적 방법을 구사해 '한국 문학사의 신개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는 생전에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보관문화훈장(1999),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수상했다.
또 '광장'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돼 해외 연극무대에도 올랐으며 '회색인'은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로,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는 영어와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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