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처럼 허수무레하고 슴슴하게 다가온 단어들"
[인터뷰] '그 여자의 공감 사전' 펴낸 칼럼니스트 이윤정
-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정면에서 얼굴을 찍으면 안 돼요. 신비감이 생명이니까 뒷모습이나 옆 모습만을 허락할게요. 인터뷰라서 정면 사진을 꼭 필요하다면 아주 작은 크기로 실어주시면 안 될까요."
'그 여자의 공감 사전'(행성B)을 펴낸 칼럼니스트 이윤정은 지난 18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기자를 만나 "단어의 의미를 재정의한 신비로운 책"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책은 '고양이' '평양냉면' '빈둥빈둥' 등 단어 58개에 관해 저자의 감수성과 성찰이 담겨 있다. 개별 글은 2014년부터 중앙선데이 매거진에 연재한 칼럼 '공감 대백과 사전', '내맘대로 리스트'를 다듬었다.
이윤정은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후 한국일보 등에서 10년 넘게 기자로 일했으며 2003년부터 중앙SUNDAY와 중앙일보 등에 대중문화 칼럼을 써왔다. 이번 책에 관해 그는 "사람마다 인생에서 만나는 특별한 단어들이 있다"며 "같은 말이라도 사람마다 단어의 느낌이나 기억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다는 것은 나만의 사전을 쓰고 다시 고쳐 쓰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책을 펼치면 저자와 함께 사는 고양이 '루시'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단어마다 얽힌 사연을 읽다보면 밍밍하다기보다 평양냉면의 맛을 설명하는 백석 시인의 표현 '허수무레하고 슴슴하다'가 어울린다. 격정적인 20대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는 50대의 관록이 담겨 있기 때문.
이윤정은 "돌이켜 보면 늘 철들지 못하고 나잇값 제대로 못하면서 살아온 것같아 초조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 덕분에 지금 이 나이에도 '난 커서 뭐가 될까' 하면서 설렐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단어의 의미가 바뀐 대표적 사례로 '평양냉면'을 꼽았다. 이 책 114쪽에 담긴 '평양냉면'에는 "이십몇 년 전 처음 (평양냉면을) 만나 반한 이후 사람들에게 구박받으면서도 전파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그 여자가 나서지 않아도 젊은이들에게 '평냉'이라 불리며 지나치게 사랑받는 것 같아 소심한 불만을 품게 된 음식"이라고 돼 있다.
"지금은 강남 일대에 큰 규모로 분점까지 차린 유명 냉면집이 막 가게를 시작했을 때였어요. 그곳 사장님께 '면이 아주 정말 조금 덜 삶아진 것 같아요'라고 말하자 '아, 딱 10초 덜 삶아졌군요. 다시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요즘 표현으로 '면스플레인'(면+설명하다 합성어. 냉면에 대해 자꾸 가르치려 드는 자세)이었던 그는 "이제 평양냉면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잔소리로 목청을 돋우지 않는다"며 "일단 냉면이 나오면 찬 육수를 벌컥벌컥 들이켜 맛을 본 다음에 고춧가루만 뿌려 먹는다"고 말했다.
이어 "겨울 강추위를 뚫고 냉면집으로 달려가 이 시린 육수를 마시는 소박한 기쁨을 조용히 누리는 편이에요. 남한예술단이 평양 공연 후 옥류관에서 식사한 이후에는 평양냉면의 의미가 '내 입안에서 현실로 맛보는 통일의 꿈'이라고 바뀌었어요."
지금은 앞모습을 감추고 싶은 이윤정은 "단어의 정의가 바뀌듯 내 얼굴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순간이 올 것"이라며 "앞으로도 독자들이 '맞아 맞아' 하면서 큭큭대고 공감하는 글을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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