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전라남도에 가면 가슴 저미는 곳들이 있다"
콘텐츠 스타트업 교육 프로그램 ‘남도에 홀딱 빠지다’ 첫회 특강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인심과 손님을 맞을 때 자기의 정성을 다 하는 것. 이게 외지사람을 다시 그쪽으로 불러들이는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습니다."
지난 2일 오후2시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별관 강당에서 미술사학자이자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유홍준이 바라보는 전라남도의 매력'이라는 제목의 특강이 열렸다. 전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콘텐츠 스타트업(창업) 교육 프로그램인 ‘남도에 홀딱 빠지다’의 첫회로 준비된 이 특강에서 유 교수는 남도의 음식과 사찰 등의 맛과 멋, 그리고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유 교수는 자신의 책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창비) 1권 '남도답사 일번지’에 강진·해남지역을 가장 먼저 다룰 정도로 전라남도 지역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남도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를 문화콘텐츠로 개발하려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와 함께 유 교수는 더 나아가 자신의 미학도 피력했다. 우리 문화 속 검소하면서도 잔잔한 화려함과 장인정신(정성)을 강조하면서 "있는 그대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지켜가는데 매진하자"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유홍준 교수 특강의 중요 부분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나는 강진·해남을 갈때는 향토적 서정을 느끼러 간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게 남도를 찾아가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맞아주는 자세가 중요한 거 아닌가 라는 것이다. 지금도 내가 후회하는 것은 (내가 해남 땅끝 마을을 책에 담은 것인데) 땅끝의 토말비(土末碑) 조그만 거 있을 때는 땅끝의 처연한 느낌이 있는데 (그후 이곳이 유명해지면서) 3층 전망대를 만들어놨다.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우리도 이렇게 고층빌딩 타워를 지었다, 이렇게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하는 개념 속에서 손님들을 더 전망대로 오게 하려는 생각이었겠지만 토말비 있을 때만이 한없는 향토애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다시 원상복구 하고 싶다.
사실 (내가 남도 답사를 다니던)1980년대 초만 해도 강진 가는 길에 비포장이 많았다. 경상도는 지방도로까지 다 아스팔트가 깔려 있었는데 영암에서 강진가는 군청에서 군청으로 이어지는 길도 비포장이었다. 그런데 남도가 자랑하는 것 하나는 음식문화다. 그 음식문화란 게 음식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첫째는 정성이고 본래 우리 향토가 갖고 있는 인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1980년대 당시는 답사 선발대가 여관을 예약하고 와야 본대가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답사비를 받는 상황에서 두명 선발대를 보내면 비용이 더 드니 그걸 줄이기 위해 아는 정보를 이용해 예약을 하기도 했다. 부여 무량사 갔을 적에 (무량사) 앞의 A식당에 “할머니 우리 무량사 가서 40분만 보고 부여로 가야 하니까 40분간 밥해놓으면 먹고 가겠습니다" 했다. 그랬더니 "1시간 있다 오라"는 것이다. 뭐 차리려면 1시간은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장삿속으로 뭘 빨리 하려는 게 아닌 거다.
또 강진 다산초당에서 병영성(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있는 성곽)을 가는데 B식당에 전화를 했다. "우리 지금 30분이면 갈거 같은데 40명 밥 좀 해달라" 했더니 "안된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을 얼마나 줘야 하나" 했더니 "45분은 줘야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40분만에 도착해 보니 음식(밑반찬)을 차려놓은 상 위에 다 종이를 덮어놨다. 학생들은 배가 고픈데 아주머니가 절대로 종이를 들치면 안된다고 했다. 벌받듯이 학생들이 살짝 종이를 들쳐 밑반찬을 빼먹고, 그걸 본 아주머니는 그냥 놔두라고 뭐라고 하고….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상 가운데 딱 놓고 뚜껑을 열어야 뽀대가 나는 거라는 거다. 관광식당에서 그냥 오는대로 먹고 가는 것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이게 남도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자산이다. 인심과 손님을 맞을 때 자기의 정성을 다 하는 것. 이게 외지사람을 다시 그쪽으로 불러들이는 가장 큰 매력인 거 같다.
한번은 순천 선암사 앞 C장에 갔는데 간 이유가 선암사 앞 숙박 및 음식점이 7~8군데인데 토박이가 운영하 것은 그 곳 하나여서다. 사업으로 (외지인이 들어와) 하는 것과 동네사람이 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런데 독일 사람과 같이 갔는데 아저씨가 밥하다 말고 없어졌다. 독일인이 맥주를 좋아한다고 시내에 맥주를 사러 간 것이다. 그 정성은 과잉친절을 넘어섰다(웃음). 우리의 동동주나 막걸리를 먹고 싶어 간, 늘상 맥주 먹고 사는 사람한테 먹인다고 맥주 사오느라고 고생하고 그런 집도 있다.
관광은 가장 큰 과제가 어디서 자고 무엇을 먹느냐다. 볼거리를 목적으로 가긴 하지만 나머지는 그거다. 숙소가 편하고 먹을 것이 가성비가 높은 것. 유적지라든가 관광지를 개발할 때 이것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했다면 유적기념관을 허황되게 짓는 이런 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지역이든 자기가 있는 지역을 내세울 때 국토 전체 속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위상을 이야기할 때 멋있지 억지로 거기가 최고다 하면 사람들이 감동도 동의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거다. 우리는 별것이 없지만 여기는 자연의 평범한 모습이 녹아있고 인심이 녹아있다, 이러면 되는 것을 서울처럼 뭐가 있다, 유적지 뭐가 있다 이래서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중략)
노무현 대통령이 솔직하고 담백한 분인데 어느날 (청와대에) 밥먹으러 오라고 해서 갔다. 내가 구라를 잘 풀기에 방송국 같아 그 얘기를 들으려고, 또 역사책을 많이 읽은 분이라 이야기 나누려고 날 부르신 거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나는 김해 사람인데 거제도에서 한려수도를 바라보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싶어 눈물이 난다"면서 "지중해 못지않게 아름다운 그곳을 우리는 왜 관광지로 개발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지중해의 넓이는 다도해의 20배다. 섬 하나가 도 하나 크기라서 그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된다. 그리고 산토리니(에게해 남쪽 그리스령의 섬) 집은 그 동네의 건축자재 아니면 못짓게 한다. 발파석이나 '삐까번쩍'한 재료를 안쓰는 그런 노력을 한다. 그리고 다도해는 배와 비행기가 뜰 수 있는 날이 1년 중 180일밖에 안된다. 관광 왔는데 배가 안뜨고 그러면 (제때 돌아갈 수 없어) 망하기에 대체할 수 있는 루트가 함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숙박시설 문제도 있다. 더 중요한 거는 그 섬에 가면 가슴 저미게 하는 섬마을 만의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 그런 섬이 5~6개만 있어도 나머지는 살아난다"고 조언했다.
이 일은 문화재청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가고 싶은 섬, 살고 싶은 섬’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 잘 해나갔다. 하지만 다음 정권에서 축소하고 하는 둥 마는 둥 해 없어졌다. 아깝다.(중략)
80년대 남도는 큰 기대를 않고 갔는데 시골 외가댁 간 느낌이어서 다시 이끌린다. 그리고 남도가 가진 것 중에서 다른 것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남도의 사찰들이다. 사람들은 내 답사기 때문에 절집이 망가졌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다. 포크레인 때문에 망가졌다. 작고 언덕진 절 마당에 꽃밭을 꾸며놓은 것을 포크레인이 한 시간을 밀면 연병장이 된다. 그 아기자기한 맛을 가진 곳을 전부 평평하게 만들어 휑하다. 못 살던 집이 살림이 펴면 마당부터 늘리는 것처럼. 생각하면 답답하다.
어느 정도 됐을 때에는(조경이 자리잡았을 때는) 200년 전에 있는 것에서 나무 자란 것 외에는 돌멩이 하나 옮기지 않아야 하는 건데. 하지만 절들도 하도 힘들게 살았기에(이런 요구를 하기가 어렵다)…. 전남 화순의 쌍봉사는 비구니 스님 2명이 지키고 계셨다. 화순군 극빈자 명단에 올라 있는 이분들이 초파일날 재를 지낼 물품이 없어 탁발을 나간 사이에 초가 넘어져 불이 났다. 1984년 이야기다.(중략)
남도를 떠나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 애기할 때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 하면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로 요약된다. 이것은 백제의 미면서 조선, 남도의 미이자 우리들의 미다. 저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잘못될 게 하나도 없다.
솔직히 수없이 많은 강의를 했지만 '전도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문화유산의 미를 전도한다고. 그러니 힘들지 않았다. 안믿는 이도 믿게 만드는 게 전도사인데 믿겠다고 왔는데 뭐(웃음)…. 어디 팸플릿에서도 이 말을 썼고, 우리 동네 미장원에서도 이 말이 쓰인 간판을 내놓았다. 지금 대한민국의 민도(문화수준)가 이정도가 됐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개념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가 삶을 보는 게 다르다.
또 장인정신이 있어야 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20세기 대표적인 근대 건축가인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명작이란 뭐냐" 물으니 "신은 디테일 안에 있다"고 대답했다. 이를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자회사는 "악마는 디테일 안에 있다"로 바꿔 쓰더라. 요리도 섬세하고, 완벽하고, 최선을 다하고, 정이 있어야 한다.
2002 한일월드컵 당시 일본 쪽 조직위원장은 오카노 슌이치로 일본축구협회장이었다. 당시 한국 쪽 조직위원 중 한 명이었던 유병진 명지대 총장에게 들은 얘기인데 조직위원회 업무차 오카노 위원장을 만나러 도쿄 우에노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우리나라 붕어빵 비슷한 ‘다이야키’라는 도미빵 가게 2층에 있더라는 것이다.
사무실로 올라가니 오카노 위원장은 그 집의 내력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4대째 그 빵가게 당주(주인)라고 말했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응접실 한쪽엔 가훈이랄까 사훈이 걸려 있는데 그게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는 거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앙꼬(팥소).'
찌개가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고, 종이를 들추면 뭐라 그러는 식당 주인과 학생들의 실랑이, 그것은 잊을 수 없는 명장면이다. 그렇다고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시골사람들이 기운쓰면 골치 아파지거든.(웃음) 있는 그대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지켜가는데 매진해야 한다.
ungaungae@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