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 '대가' 일운스님 "먹방 열풍의 바탕은 '탐욕'"
[인터뷰]책 '마음밥상' 펴낸 경북 울진 불영사 일운스님
- 권영미 기자
(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행과 지혜를 닦는 몸을 지탱하기 위한 방편이 ‘사찰 음식’입니다."
'오신채'를 멀리 하고 고기를 먹지 않는 건강식이라며 '웰빙' 바람을 타고 수년전부터 사찰음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사찰음식은 입을 즐겁게 하는 음식도, 장수할 수 있는 건강식도 아니고 단지 수행의 한 방법일 뿐이라고 사찰음식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 온 일운 스님은 말했다.
깊은 산속에서 자급자족해야 하는 사찰의 상황에서 '먹는다'는 것은 모두 같이 노동해 식재료를 가꾸고 욕심내지 않고 제철의 것을 취하는 마음 수행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일운스님은 사찰음식을 이같은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 정신이 담긴 소박한 음식들을 소개하는 책 '마음 밥상'(모과나무)을 최근 출간했다. 뉴스1은 매년 가을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경북 울진 불영사에서 '사찰음식축제'를 열며 사찰음식의 정신을 알려온 일운스님과 책에 대해, 그리고 사찰음식에 대해 이메일로 이야기를 나눴다.
일운스님은 사찰에서 육식을 멀리하는 이유로 "모든 중생은 다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인간이 우월한 존재라는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미물에 대해서도 생명존중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TV 프로그램의 소위 '먹방' 열풍에는 물건을 더 많이 팔고 소비를 촉진하려는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일운스님과 나눈 인터뷰다.
-사찰음식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원래 불교는 석가모니 시절부터 음식을 만들고 저장하는 행위를 '물적 소유'라고 멀리해서 '탁발'(민가에서 음식을 얻는 것)을 통해 먹을 음식을 마련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의 불교 탄압으로 사찰이 산중에 자리하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고 채집을 해야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수십년 전까지 그래도 탁발의 전통은 일부 남아있었지만 현재는 종단이 금지해 탁발승을 보기 힘들다. 수백년간 형성된 '반농반선'(半農半禪)의 정신에 기초해 스님들은 경내에서 울력(공동 노동)을 통해 사계절 밭을 일궈 재료를 직접 재배하고 음식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사찰만의 독특한 음식 문화가 형성됐다.
-책 '마음밥상'에서 '사찰에서는 음식을 찬양하지도 비방하지도 맛에 집착하지도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맛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일반적으로 쓰는 ‘맛있다’는 말은 혀에서 전해오는 즐거움에 취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맛은 크게 재료 본연의 맛과 오랜 시간 길들여진 인공감미료의 맛으로 구분할 수 있다. 식재료가 갖는 색과 성질에 따라 쓰고, 맵고, 짜고, 달고, 신 '오색오감'의 맛이 본연의 맛인데 이런 맛을 지닌 식재료들은 우리 몸 속 장기들의 넘침과 모자람을 보강해주며 몸의 건강을 유지해준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맛있다’고 할 때의 맛은 주로 단맛이나 자극적인 매운맛이다. 맛이 주는 쾌락과 탐욕에 젖게 되면 사람의 몸은 쉽게 영양 불균형을 겪으며 건강을 해치고 그로 인해 정신까지 혼미하게 된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행위가 아니다. 맛이든 몸에 좋은 것이든 어떠한 원칙을 세우거나 제약을 두고 지켜 나가는 것이 아닌 ‘다만 몸을 보존하고 오래 살면서 병이 없게 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TV에서 '먹방'(음식을 먹는 장면을 방영하는 것) 열풍이 불었다. 왜 그런 현상이 일었다고 생각하는가.
▶TV 프로그램의 먹는 열풍은 말초적인 오감을 자극하고 여론을 몰아 광고를 통해 물건을 많이 팔고 소비를 촉진하는데 숨은 목적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시대에 '나 홀로 식사'를 해결해야 하는 이들을 소비자로만 보고, 남의 먹는 모습에 넋을 놓고 보게 하거나 맛집들을 찾아다니며 소비를 많이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하지만 ‘사찰음식’은 자연이 허락하는 수준의 에너지로 키운 식재료를 내가 섭취함으로써 온전히 자연의 일부가 되고 나도 내 일부가 된 자연의 에너지를 발산해 이웃을 위한 존재로 거듭나는 것이 목적이다.
-경내에서 채소를 기를 때 벌레가 많거나 산짐승들이 밭을 망치는 경우는 어떻게 대처하나.
▶벌레나 짐승 등 자연의 구성원 모두는 스님들 보다 훨씬 먼저 절이 있던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그런데 스님들이 이를 잡거나 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것이다.
농약을 쓰지 않고 친환경적인 농법으로 키우다 보니 사찰 밭의 유기농 채소들은 유독 벌레 먹은 흔적들이 많다. 불영사가 잠시 의지해 살아가고 있는 천축산의 식구이기도 한 고라니나 멧돼지, 두더지가 심심찮게 밭을 망쳐놓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생각에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다만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지네나 뱀, 쥐 등이 나오면 잡아서 계곡이나 산 속에 놓아주기도 한다.
-책에는 '연자' 등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독특한 음식 재료들이 나온다. 절에서 사용하는 특이한 식재료에는 어떤 것이 있나.
▶향신채로 많이 쓰는 재료에는 제피, 가죽, 고소가 있고 채소나 나물류로는 봄에 잠깐 순이 돋는 홑잎, 흔히 잎만 먹는 상추의 상추대, 월동초, 보리다대, 망초 등이 있다. 연꽃의 열매인 연자, 버섯으로는 송이, 능이와 싸리버섯 등도 경내나 주변에서 채취해 사용한다.
-스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가.
▶국수를 스님들이 가장 좋아한다. 호로록 소리를 내며 먹어 스님들을 웃게한다고 해서 '승소'(僧笑)라고도 부른다. 밥과 반찬, 국, 찌개가 일상식이라 별식으로 쑥떡, 도토리묵, 만두, 냉면, 메밀국수, 수제비, 연밥, 연수제비, 진달래화전 등을 해드리면 좋아하신다. 간혹 별미로 콩을 불려 삶아 두부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최근에 느끼는 가장 안타까운 점은.
▶우리 지구는 자연환경이 크게 오염되고 파괴되고 있다. 오염과 파괴의 근본 원인은 누가 뭐래도 인간의 탐욕이라 할 수 있다. 소수의 대기업이 식재료와 화학비료의 생산을 장악하고 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악순환을 이들이 부추기고 있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가공식품의 대량 소비로 인해 면역체의 이상 현상과 온갖 질병이 점점 더 많이 나타난다. 몇 해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끔찍한 사건들, 몸과 정신이 병든 사람을 일컫는 ‘사이코패스’라는 병명 아래 생명을 유린하는 일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나는 이것 역시도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에 대한 의식의 변화가 있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악순환의 연결고리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과보(果報)다. 우리 모두의 공통의 업이다. 자연과 공존할 수 있는 맑은 식재료를 재배하고 맑은 식재료로 자비를 일으키는 변화를 개인마다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인류는 자비와 평화, 사랑을 나누어 궁극에는 인류 공동체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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