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판매량과 상관없는 '베스트셀러' 순위...이걸 믿고 보라고?

베스트'셀러' 순위가 아니라 서점별 베스트'순위'의 순위, 현실성 없어
김훈 신간 '라면...', 이런 맹점에 집계대상 8곳 중 교보 등 4곳 순위없이 전체 1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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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권영미 기자 = ◇관련기사>> "김훈 책에 왜 냄비를 끼워"…문학동네 냄비 사은품 논란

'베스트 셀러(Best Seller)'는 말 그대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을 말한다. 그러나 한국 출판인회의가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는 실제 판매량과는 상관없이 서점별 '베스트셀러' 순위를 엉성하게 집계한 '순위에 대한' 순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서점에서 전혀 팔리고 있지 않은 책이 버젓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는 기형적인 순위가 나오기도 한다. 베스트셀러 순위가 독자들의 책 구매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출판 시장을 좌우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이처럼 신뢰성을 가지지 못한 출판인회의의 비현실적인 베스트셀러 순위가 출판시장 전체를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출판인회의 베스트셀러, 교보 판매 '0권'이어도 상위권 차지할 수 있다.

출판인회의가 매주 발표하는 '베스트셀러' 순위는 교보, 예스24, 영풍, 반디앤루니스, 알라딘, 인터파크, 부산의 영광서적, 대전 계룡문고 등 8대 전국 온 오프라인서점의 자료를 집계해 발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집계하는 자료가 실제 도서 판매량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책이라도 판매량이 제각각인 8개 서점에서 발표한 순위를 가져다가 1위는 20점, 2위 19점, 20위는 1점식으로 점수를 준뒤 가점을 부여해 단순합산한다.

이렇게 되면 규모가 큰 서점에서 1000권이 팔려 20위를 한 책이 규모가 작은 다른 서점에서 100권이 팔려 1위한 책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또 고르게 낮은 순위로 8개 서점 순위 모두에 오르며 수 백 권을 판 책 보다 한 서점에서만 몇 십권을 팔아 1위를 한 것이 월등하게 유리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크다.

또 교보나 예스 24 등 대형 서점의 순위 내에 전혀 들지 않고도 그밖의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 서점에서 1~5위에만 올라도 전체 베스트 셀러 순위 상위권에 오르거나, 오프라인 서점에는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이 온라인 서점 한두곳의 예약 판매만으로도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는 일이 생긴다.

이런 순위 산정의 불합리성으로 인해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 의혹을 낳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새움 출판사의 이정서 대표는 소설가 김훈의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문학동네)를 11위로 발표한 출판인 회의의 9월 4주 베스트셀러 순위에 대해 "교보문고에서 23일경 발표한 지난 주 종합 베스트 순위에 200위 안에도 올라있지 않고 인터넷 주간 베스트 순위 11위에 오른 게 전부이며 ,예스24에서는 주간 39위에 올라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해당 주간 순위에 대해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일반 독자의 상식적인 눈으로 봐도 아직 서점에 나오지도 않은 책인데다, 도서 판매량 전체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교보나 예스24의 순위권 밖에 있는 책이 전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른 것이 쉽게 납득하기 힘든 결과다.

◇자료만 인터넷에서 가져다가 합산, 원칙없는 가산점, 주먹구구식 순위집계

출판인회의는 조작의혹을 부인하며 9월 4주 순위 산정 자료를 지난 9월 30일 내놨다. 그 결과 '라면을 끓이며'는 교보문고를 비롯해 집계대상 서점 8곳중 4곳만의 순위를 가지고 베스트셀러 순위를 매긴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 담당자는 "우리는 책 발송량으로 집계하기 때문에 예약 판매를 포함한 순위를 제출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부산 영광도서 대전 계룡문고 역시 예약 판매를 집계하지 않거나 온라인 서점이 없다는 이유로 "출판인 회의에 '라면을 끓이며'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놀라운 요소는 '라면을 끓이며'가 단 4곳의 순위별 점수 합산 만으로도 무려 전체 11위에 오를 수 있었던 순위 산정 방식의 허점이다.

출판인회의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9월 4주차 집계에 사용한 4개 서점 순위는 예스24가 17위, 알라딘이 2위, 인터파크가 9위, 반디앤루니스가 5위다. 각각 4점, 19점, 12점이 부여됐지만 반디앤루니스는 가중치 때문에 27.2점이나 부여됐다. 출판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교보(0점)와 예스24(4점)를 합쳐 4점에 불과했지만 알라딘과 반디앤루니스 등이 얻은 60점에 육박하는 성적으로 '라면을 끓이며'의 총점은 62.2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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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디앤루니스가 받은 가중치가 눈에 띈다. 출판인회의는 “판매량, 지역편차, 서점의 특수성 등을 고려해 교보,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3곳 서점에 가중치를 부여한다”고 설명하면서 “인터넷 서점은 이벤트를 통한 일시적인 판매량 증가 즉 등수 올리기 가능성이 높기에 오프라인 서점에 높은 가중치를 부여했다”고 했다.

그러나 △온라인 판매량 1위로 전체 출판 시장 15~20%, 온라인 시장 50%선의 점유율로 추정되는 예스 24에 대한 가중치가 부여되지 않은 점 △온 오프라인 판매를 겸하고 있는 반디앤루니스에 가중치가 부여된다는 점 △판매량으로 비교했을 때 차이가 날 것으로 추정되는 교보와 반디앤 루니스, 또는 예스 24와 지방 서점간에 같은 가중치를 받고 있다는 점 등을 볼때 가중치 역시 일관성 없이 부여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가중치는 매기는 반면, 순위가 아예 나오지 않는 서점에 대해서는 감점을 매기지는 않는다. 이런 계산 덕분에 교보나 예스24등 국내 최대 온 오프라인의 순위와는 전혀 관계없이 알라딘과 반디앤 루니스 서점의 상위에 오른 결과만으로도 예약판매중인 '라면을 끓이며'가 11위에 올랐다.

자료 집계 역시 주먹구구식이다. 출판인회의 집계에 사용되는 자료는 계룡문고만 공식적으로 제출하고 나머지 7개 서점은 출판인회의 담당자가 순위 집계일인 목요일 각 서점 사이트를 검색해 당시 순위를 취합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서점이 공식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어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책임규명이 어려워진다.

또 실시간 혹은 일자별로 순위가 바뀌기에 순위의 타당성이 의심되는 경우 자료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각 서점은 월요일~일요일 기준으로 주간 순위를 게시하는데 출판인 회의의 경우 목요일에서 다음 주 수요일까지의 1주 순위를 집계해 이 또한 혼란을 가중시킨다.

단순히 많이 팔린 책의 순위일 것이라고 믿고 보던 것이 불과 '순위의 순위'일 뿐인 데다가 모든 단계에서 불합리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출판관계자는 "판매량 아닌 순위를 모아 작성하는 줄 몰랐다. 현실에 토대를 두지 않은 이런 식의 집계는 안하느니만 못하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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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출판사, 이벤트 통해 몇 곳만 공략해도 순위 상승

문제는 단순히 베스트셀러 순위를 믿지 못하겠다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점 한두곳의 상위권에만 들어도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는 맹점을 이용, 자본이 두둑한 대형출판사가 물량공세 이벤트 같은 마케팅의 힘으로 한두 곳 서점의 순위를 끌어올려 전체 베스트셀러 순위를 끌어 올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번 '라면을 끓이며'의 경우 문학동네는 예약판매를 하며 마일리지 500 차감(500원 상당)에 양은냄비와 신라면, 저자의 친필 사인 책 세가지를 모두 제공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냄비와 라면세트 1800개가 이틀만에 동이 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원가만 따져도 수천원에 달할 물품을 500원 상당에 제공하는 이같은 마케팅은 대형출판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도서정가제에 따르면 책값의 10%에 한해 가격할인, 5%에 한해 경품, 마일리지, 상품권 등을 줄 수 있다. '라면을 끓이며'의 정가는 1만5000원이다. "예약 판매 시작 및 이벤트 개시와 동시에 일부 인터넷 서점 등에서 일간 베스트 셀러에 몇 차례 상위에 올랐던 '라면을 끓이며'의 순위 결과가 이런 물량공세와 전혀 상관없는 결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출판계의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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