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버리는 통신사③] '탈통신' 성공한 해외 통신사는?…비결은 뭘까
BT·오렌지·도이치텔레콤…위기상황서 탈통신으로 전화위복
5G 기반 신시장 개척이 관건…"경험해보지 못한 경쟁"에 직면
- 조소영 기자
(서울=뉴스1) 조소영 기자 = 새해 들어 국내 이동통신 3사(KT·SK텔레콤·LG유플러스)의 '탈(脫)통신 행보'가 더욱 본격화될 전망이다.
탈통신은 통신사들이 10여년 전에도 외쳤던 구호. 해외 통신사들도 과감한 사업 다각화를 통해 통신사로서의 정체성을 뛰어넘는 도전을 진행 중이다.
◇BT·오렌지·도이치텔레콤…위기상황서 탈통신으로 전화위복
지난해 KT는 통신기업(Telco)에서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Digico)으로 변신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SK텔레콤은 아예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의미를 제대로 담을 수 있는 사명 변경까지 검토중이다. 2010년부터 탈통신을 염두에 두고 일찌감치 사명에서 '티'(T·텔레콤)를 떼버린 LG유플러스도 '종합 ICT 플랫폼 사업자'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다.
통신사들이 한목소리로 탈통신을 외치고 나선 이유는 '본업'인 통신시장이 포화상태기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통신3사 무선사업 매출의 성장세는 모두 한 자릿수에 그친 반면 미디어·인공지능(AI)과 같은 비(非)통신분야 매출은 두 자릿수 성장을 견인했다.
그렇다면 탈통신으로 성공한 통신사는 존재할까.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
대표적인 사례로는 '멸종을 앞둔 공룡'으로까지 불렸던 영국 통신업체 브리티시텔레콤(BT)이 꼽힌다. 당초 BT는 국가가 만든 공기업으로서 1846년 세계 최초 통신회사로 설립돼 1990년 말까지 유선 통신사업에 주력했던 곳이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이 BT를 덮쳤다. 1991년 영국 정부는 BT가 독점해오던 전화망을 다른 기업들도 빌려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유선 통신망 개방을 명령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동통신 서비스와 초고속 인터넷이 주를 이루는 시대가 다가오면서 결국 BT는 2001년 300억 파운드(약 62조원) 부채를 안은 채 파산 위기를 맞았다.
이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BT는 위기상황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회생했다. 영국 내 낡은 구리선을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로 바꾸고 이에 발맞춰 비즈니스 모델(BM)도 바꿨다. BT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TV(IPTV), 인터넷전화(VoIP) 등 차세대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다시 자리를 잡았다.
BT는 '통신은 내수산업'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해외로도 눈을 돌렸다. 통신 서비스를 포함해 통신 기기의 제조·판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미국, 캐나다 등 세계 각국에 진출해 다국적 종합 IT 솔루션 기업으로 변신에 성공했다.
2010년 BT 매출의 50%가량은 기업 고객에 IT·통신 기반 시설을 구축·운영해주는 등 IT 서비스에서 나왔다. 2015년 BT는 영상·음향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돌비 래버러토리스(돌비)와 손잡고 기업용 콘퍼런스 콜의 음성 품질을 강화한 솔루션 BT밋미(MeetMe)를 전 세계에 출시하는 등 IT 솔루션 기업으로서 완전히 자리잡은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 최대 다국적 통신사인 오렌지(Orange) 또한 통신에서 탈통신으로 발을 넓혀 성공한 통신사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오렌지의 전신은 1988년 설립된 국영 통신사 프랑스텔레콤으로, 프랑스텔레콤은 2000년 영국의 이통사 오렌지텔레콤을 인수한 바 있다. 지금의 오렌지로 사명이 자리잡힌 건 2013년 주주총회 때로, 브랜드명이 사명이 됐다.
오렌지는 2006년부터 통신사업에서 나아가 인터넷, TV, 모바일, 기업 서비스 등을 '오렌지'라는 브랜드로 한데 묶는 융합 정책을 펼쳤다. 2008년에는 영화 시리즈 채널을 개편하겠다는 목적으로 워너 브라더스로부터 독점권을 구매했고 프랑스 축구연맹으로부터 축구 경기 방영 독점권을 확보하는 등 미디어 콘텐츠 분야에도 손을 뻗었다.
2012년에는 이집트 이통사 모비닐, 2014년 스페인 통신사 재즈텔을 인수해 양 국가 이동통신 시장에 진출하기도 했다. 현재 오렌지는 이동통신과 전화 뿐만 아니라 유무선 인터넷, IPTV,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IT기업으로 꼽힌다.
오렌지는 2017년 11월에는 통신업체로서 기존 은행과 손을 잡지 않은 독자 은행사업을 업계 최초로 출범시켜 화제가 됐고 이후 보안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전 산업 나아가 전 세계적 디지털화 속에서 갖가지 보안 위협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고 보안 솔루션 영역에 선제적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오렌지 사이버드펜스(Orange Cyberdefense·오랑쥬 사이버드팡스)는 프랑스 보안시장에서 완벽히 자리를 잡았고 2019년 오렌지는 영국 보안 회사 시큐어데이터, 네덜란드 보안 전문 업체인 시큐어링크 등을 인수하면서 유럽 보안시장 선도에도 나섰다.
한때 1500만명의 이용자가 경쟁업체에 가입하면서 위기를 맞았던 독일 도이치텔레콤도 통신사업에서 선전해 △브로드밴드(초고속 인터넷)·유선네트워크 통합 △애플의 아이폰 판매 등 사업의 다각화로 재기한 사례이다. 현재 고정 광대역 네트워크, 이동통신, IPTV 등은 물론 기업 고객을 위한 ICT 솔루션 등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도이치텔레콤은 2018년 초 시스템 솔루션 사업을 시작, 다국적 기업 및 공공기관을 위한 ICT 인프라와 산업 솔루션을 개발·운영 중이다. 도이치텔레콤의 사업 범위는 서유럽, 미국, 캐나다, 러시아, 중국, 일본, 아프리카 등으로 뻗어있고 지난해 11월에는 SK텔레콤과 손잡고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같은 해 2월에는 도이치텔레콤과 도이치텔레콤이 최대 주주인 미국 티모바일(T-Mobile US), 프랑스 오렌지, 스페인 텔레포니카가 통신사 로밍 할인 계약을 자동으로 관리하는 블록체인 솔루션 시험을 진행해 눈길을 모았다. 통신사 업무의 자동화라는 부분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솔루션 부문으로의 사업 확장 가능성 때문이다.
자사 홈페이지에서 도이치텔레콤은 "지난 2019년 회계연도에 805억 유로(107조)의 매출을 올렸고 그중 약 66%가 독일 외 지역"이라며 "우리는 전통적인 전화 회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서비스 회사로 진화하고 있다. 네트워크 연결의 운영 및 판매는 기본이고 새 성장 기회를 열어주는 비즈니스 영역에 적극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기업들이 변신에 성공한 것은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BT는 변화 과정에서 24만명에 달했던 영국 본사 직원을 8만명으로 줄였다. 오렌지의 경우 1996년 민영화 이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따라 2008년부터 끔찍한 '자살 도미노 현상'을 겪었다. 도이치텔레콤도 과거 위기상황에서 3만여 명의 직원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5G 기반 신시장 개척이 관건…통신사 "경험해보지 못한 경쟁"에 직면
해외 기업들의 성공 사례는 위기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새 흐름에 맞는 과감한 비즈니스 모델을 전개했다는 점이 공통점이다.
이를 지금 우리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5G 네트워크 등장이라는 새 물결에 맞춰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국내 통신사들이 탈통신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등 기존 전통산업(제조업·의료 등)과 5G 네트워크를 융합한 신시장 개척에 과감히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국내 통신사들은 일명 ABC(인공지능·빅데이터·클라우드)에 집중할 비통신 사업 전담 조직을 전면에 내세우는 등 탈통신 사업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단, 그만큼 경쟁자가 늘어나고 투자 비용 또한 증가할 것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특히 투자 문제와 관련해 통신사들은 주 사업인 망 투자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것인 만큼 비용 지출 부담도 크다. 지난 2019년부터 국내 통신사들은 '5G망 구축'에 전력을 다하면서 모든 인력과 재정을 이에 투입 중이다. 통신 3사의 2019년 망 투자비는 총합 9조원에 달한다.
김용희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는 "그간 통신사들은 본인들이 압도적 경쟁력이 있는 시장에 있어왔지만 탈통신 분야는 다르다"며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기업들의 자본력을 무시할 수 없고 모빌리티나 이커머스 등 특정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기업들도 다수인 만큼 통신사들은 '경험해보지 못한 경쟁' 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cho1175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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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통신사가 '탈통신'을 외친 지 어언 10년이다. 그리고 새로운 10년을 맞는 현재, 통신사들은 다시 '사활'을 걸고 탈통신을 외친다. 이유는 무엇일까. 통신은 4차산업혁명의 '고속도로'라며 치켜세우지만 실상은 4차산업의 '통로' 역할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 탓이다. 지난 10년간 탈통신의 성과도 아직 미미하다. 앞으로 갈 길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뉴스1>은 통신사들의 탈통신 전략에 대한 성과를 진단하고 전략을 짚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