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UP] "죽은 새 같다" 충격에 사업 접을 생각도…지금은 코끝이 찡
치매 예방 AI 로봇 '피오'…치매 환자 수없이 찾아가 경청
치매환자들, '피오' 통해 인지력·정서적 안정감 향상돼
- 정윤경 기자
(서울=뉴스1) 정윤경 기자 = "컴퓨터가 가정에 들어왔듯, 로봇이 가정에 들어오는 세상이 펼쳐질 겁니다. PC가 보급될 때의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스마트폰이 보급될 때의 애플처럼, 로봇이 가정으로 들어올 때 와이닷츠는 '리딩 컴퍼니'로 자리매김 하고 싶습니다."
'반려 동물'에 이어 '반려 로봇'의 시대가 왔다.
윤영섭 와이닷츠 대표(31)는 고령화와 1인 가구·맞벌이 증가 등의 영향으로 반려로봇이 개나 고양이 역할을 대신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영리적인 목적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싶은 뜻에서 노인들의 치매를 예방하거나 재활을 도와주는 인공지능(AI)로봇 '피오(PIO)'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1999년 소니는 반려견 형태의 로봇 아이보(AIBO)를 출시했으나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생산을 종료했다. 이후 2018년부터 새로운 버전의 아이보를 내놓았지만 이 역시 별다른 호응을 못 얻고 있다.
윤 대표는 '피오'가 인간의 정서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앞서 나온 로봇들과는 다르게 국내 AI로봇 시장을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 "인간에 도움 줄 수 있는 로봇 뭘까 고민"…앵무새 AI로봇 '피오'의 탄생
2016년 서울대에서 로봇AI 만들기 강의를 들었던 수업을 들으며 만들었던 앵무새 로봇을 SK Creative Challenge 대회에 출품, 그해 대상을 수상했다.
윤 대표는 함께 피오를 만들었던 조원들과 의기투합해 2017년 와이닷츠를 창업했다.
윤 대표는 "그 당시에도 일본에서 만든 '아이보'라든지, 물개 로봇 '파로' 등 다양한 형태의 로봇들이 있었는데 내용을 들여다보면 가격대비 효용성이 없어서 확산되지 않았다"며 "인간을 대신해서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다가 세계적으로 고령화·치매 문제가 대두 됐던 만큼 치매 예방 AI로봇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치매 예방 AI로봇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그는 적합한 동물을 찾기 위해 동물 매개 치료에 대해서도 공부했고 그 중 말을 할 수 있으면서 2족 보행인 '앵무새'를 선택했다.
윤 대표는 "앵무새는 '말을 할 수 있는 동물'이라고 잘 알려진 만큼 피오가 어르신들에게 말을 걸 때 거부감이 가장 적을 것 같았다"며 "또 4족 보행 동물은 아직 제작이 어려운 만큼 앵무새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오'는 알에서 깨어나 노인들의 도움으로 성장하는 콘셉트의 로봇이다. 이용자는 하루 약 1시간 동안 피오를 돌볼 수 있고 총 12회에 걸쳐서 돌보면 교육방식에 따라 화가, 운동선수, 변호사 등의 직업을 얻게 된다.
왕관 앵무새를 본뜬 외관은 2등신으로 제작됐다. 겉은 하얗고 매끈하며 이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얼굴엔 큰 눈이 달렸으며 카메라가 탑재됐다. 머리는 피오의 감정을 나타내고 사용자를 인식할 수 있도록 상하좌우로 움직일 수 있다. 또 날개에는 불빛이 들어오는 LED가 달렸으며 피오의 행동을 이용자가 따라 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소리가 나오는 둥지 부분은 허리를 제대로 펴기 어려운 노인들의 자세를 고려해 낮게 제작했다.
지금의 외관이 되기까진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윤 대표는 실제 앵무새에 가깝게 제작된 피오를 노인들이 좋아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예측은 완전히 빗겨나갔다.
윤 대표는 "피오를 들고 시설에 가보니 좋아하는 어르신도 있었지만 '무섭다', '죽은 새 같다'고 해주는 분들이 있었고 충격을 받았다"며 잠시 사업을 중단했다고 토로했다.
당시 그가 배운 것은 디자인의 중요성보다는 현장의 중요성으로, 윤 대표는 "주변에서 고령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하려면 그분들을 계속 찾아가서 그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안 했던 것 같다"며 "그때 충격을 받은 이후 팀원들에게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하자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후 작고 덜 가공된 형태의 피오를 새로 제작했고, 윤 대표는 이를 들고 노인들을 다시 찾았다.
그는 "어르신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계속해서 귀담아 들은 이후 치매 센터에 납품했더니 반응이 너무 좋았다"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그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옆에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피오야, 나도 보고 싶었어'란 말에 코끝이 찡…가치를 공유하겠다"
윤 대표는 노인들이 피오를 통해 자기 효능감이 높아질 수 있도록 피오를 설계했다고 말한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불편하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느껴질 수 있게끔 하기 위해 피오가 도움을 요청하면 노인이 이를 해결해주는 식이다.
윤 대표는 "치매센터에 오는 어르신들의 대다수가 자신이 치매임을 인지하고 있고, '이것을 하라'는 식의 주문을 싫어하신다"며 "피오가 '이것을 해주세요'하고 요청하면 어르신들은 피오를 통해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믿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피오가 '어르신 보고 싶었어요'라고 하는 말에 한 어르신이 '나도 보고 싶었어'라고 하시는걸 보면서 코끝이 찡했다"라며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표현을 듣지 못하셨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반려동물이 노인들의 정서적 안정감을 높이고 치매를 예방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 처럼 피오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반려동물은 치매환자들이 키우기엔 산책·배변·끼니 등 어려운 점이 많이 있지만 로봇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며 "가까운 미래에는 로봇이 어르신의 반려동물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노인들의 정서 안정과 인지력 향상에도 도움이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동대문구 치매안심센터와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6주동안 피오를 경험한 어르신들의 △이름대기능 △학습능력 △삽화기억 △자아존중감 등이 2.2%P~8.1%P 상승했으며 △기억감퇴 △우울감 △불안감 △일상생활 장애 등도 일제히 개선된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네이버의 기업형 액셀러레이터 D2SF에 투자를 받은 와이닷츠는 네이버의 음성인식 기술을 지원받고 있다. 음성인식 기술의 경우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을 때는 정확도 수준이 높아졌으나 치매환자의 음성 인식률은 낮은 편이다. 이 때문에 피오도 음성인식이 아닌 태블릿PC를 통해 입력해야 작동한다.
윤 대표는 "네이버에서 개발한 텍스트 음성 변환(TTS) 기술이 이전에 이용했던 것보다 훨씬 좋아서 지원을 요청한 상태"라며 "영상 데이터의 경우 용량이 워낙 커서 관리가 어려운데 이 부분도 네이버에서 지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영리적인 목적만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기업이 되고 싶다"며 "세상에 필요한, 사람을 도와주는 로봇을 가정에 들여오는 것을 그 시작점으로 삼아 IT업계의 좋은 사례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v_v@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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