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이 문젠데"…정작 해외기업 못잡는 'n번방 방지법' 논란

유명무실 역외규정…"입법과 집행은 별개"
"해외사업자 규제집행력은 두고 국내 사업자만 부담"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체감규제포럼,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등 주최로 열린 '20대 국회의 인터넷규제입법 임기 말 졸속처리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0.5.12/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김정현 기자 = 온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텔레그램 n번방 사건'. n번방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전기통신사업법·정보통신망법·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n번방법)이 '졸속' 논란에 휘말렸다.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IT업계 관계자들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문제를 잡겠다면서 텔레그램에 대한 단속 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n번방법의 졸속 처리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한상혁 방통위원장 "역외규정 두더라도 집행력과는 별개" 한계 언급

현재 n번방법이 '졸속' 취급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n번방법이 발의된 원인이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사건에 있는데도, 막상 텔레그램에 대한 실효성있는 집행이 현재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n번방법 중 하나로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대표발의한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보면 제5조2항에 '역외규정'을 신설했다. 해외 사업자라도 국내 시장·이용자에 미치는 경우에 해당 법을 적용한다는 규정이다.

지난 7일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상민 의원(더불어민주당)과의 질의에서 "국내대리인 지정 제도가 입법되면 노력하겠지만, 역외적용 규정을 둔다 해도 집행력과는 별개"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실제로 텔레그램의 경우 창업자인 본사의 위치조차 특정되지 않은 상태다. 역외규정을 둔다고 해도 실제 해당 법안을 집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

과방위 소속 이종걸 의원(더불어민주당)도 "이런 내용으로 정보통신망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태도를 취하는 것도 적절한 대응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0.5.7/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텔레그램은 못건드리면서"…국내 사업자, 덤터기에 '분통'

이에 텔레그램에서 발생한 사건의 '덤터기'를 쓰게된 국내 인터넷·IT업계 관계자들은 12일 기자회견에서 불만을 터뜨렸다.

체감규제포럼의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가통신사업자 대상의 불법촬영물등 유통방지 의무 조항의 경우 실제 n번방 사건의 통로가 된 해외 사업자에 대한 규제집행력은 전혀 진보된 바 없이 국내 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만 배가시키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성호 인기협 사무총장도 "국내 사업자는 잘하고 있는데 해외 사업자 때문에 법을 만들면 집행력에도 한계가 있고, 국가 상호간 문제 때문에 잘 집행이 되지 않는다"며 "안되는 걸 억지로 한다고 하면 국내기업에 부메랑으로 더 큰 문제가 되어 돌아온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n번방법 절차적 요건도 안지켜…충분한 숙의 거쳐야"

현재 n번방법은 지난 7일 국회 과방위를 통과해 본회의를 앞둔 상태다. 이날 모인 관계자들은 n번방법이 이 과정에서도 최소한의 절차적 요건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들은 "해당 법안은 지난 4일 발의돼 국회법상 입법예고기간인 10일 이상의 입법예고도 하지 않고 과방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조차 없었다"며 "발의법안은 상임위원회 전체회의를 통해 회부되고 상정되어야 하나 이 절차 역시 생략되는 등 형식적, 절차적 요건을 모두 지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용자의 통신비밀의 자유 침해, 국내 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여론, 언론, 업계, 학계의 강한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숙의의 기간과 절차 없이 졸속처리될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박 사무총장은 "(졸속 처리할 게 아니라) 유럽처럼 전문가 집단의 논의를 거쳐야 할 문제"라며 "당장 좌시할 수 없다고 법을 (졸속으로) 만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ri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