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도 플랫폼도 살아야 한다…'적정 대가' 논의에 빠진 것들
(서울=뉴스1) 이한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SO협의회장 = 최근 국회에서 열린 유료방송 콘텐츠 대가 관련 정책 세미나를 관심 있게 지켜봤다. 콘텐츠사업자와 유료방송 플랫폼 사이의 오랜 갈등을 반복하기보다 경제학적 분석을 통해 합리적인 기준점을 찾아보자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콘텐츠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지급돼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플랫폼이 존재할 수 있고,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합리적인 프로그램 사용료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 제시된 숫자가 우리 유료방송시장이 나아갈 해답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연구는 내쉬 협상모형을 활용해 2025년 콘텐츠 적정 사용료 총액을 약 2조 9000억원으로 추산했다. 이는 경제학과 게임이론에서 널리 활용되는 협상모형이다. 그러나 모형이 현실을 설명하려면 그 모형이 전제하는 협상환경이 실제 시장에서도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유료방송 콘텐츠 거래시장은 협상이 결렬되면 자유롭게 거래를 중단할 수 있는 일반적인 시장과는 상당히 다르다.
방송은 국민의 시청권과 직결돼 있어 채널 공급 중단에 다양한 규제와 제도적 제약이 작동한다. 특히 등록사업자인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와 달리 허가를 받아 사업하는 유료방송 플랫폼에는 방송의 안정적 제공에 대한 책임이 무겁게 부과된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협상 결과만으로 자유롭게 계약 여부를 결정하기 어렵다. 이런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형성이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 역시 내쉬모형에서 중요한 요소인 '협상 결렬 시 양측이 입게 될 손익'을 현실적으로 추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분석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2조 9000억원이라는 숫자는 의미 있는 연구 결과이자 하나의 참고점일 수는 있어도, 곧바로 실제 시장의 '적정 대가'라고 단정하기에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또 하나 함께 살펴봤으면 하는 것이 콘텐츠 제작비 증가와 유통구조의 변화다.
최근 제작비와 출연료, 인건비가 크게 상승한 데에는 K콘텐츠의 글로벌 시장 확대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늘어난 제작비를 콘텐츠사업자와 국내 유료방송 플랫폼이 사실상 1대1로 나누어 부담해야 한다는 접근에는 현재의 콘텐츠 유통 방식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과거에는 유료방송이 콘텐츠의 중요한 첫 번째 유통 창구였다. 지금은 동일한 콘텐츠가 홀드백 없이 OTT 등 여러 경쟁 플랫폼에 동시에 공급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독점적인 공급이나 일정한 홀드백이 보장되는 콘텐츠와 여러 플랫폼에 동시에 공급되는 콘텐츠의 가치를 똑같은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지, 제작비 상승분을 누가 어느 정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보다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유료방송 플랫폼'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IPTV와 케이블TV를 묶어 보는 것에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케이블TV의 상황은 상당히 어렵다. SO는 유료방송 사업자 가운데 방송수입 대비 콘텐츠 사용료 부담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가입자와 방송매출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도 콘텐츠에 대한 부담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두고 "SO가 콘텐츠를 비용으로만 생각해 깎으려 한다"고 평가한다면 조금은 서운하다.
케이블TV가 바라는 것은 콘텐츠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도, 좋은 콘텐츠를 싸게 공급받는 것도 아니다. 감당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콘텐츠의 가치가 합리적으로 평가되는 시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SO의 낮은 ARPU 역시 단순히 방송상품을 '헐값 판매'한 결과로만 볼 수 있을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케이블TV는 오랫동안 지역과 서민층을 기반으로 보편적인 방송서비스를 제공해 왔고, 방송요금 역시 정부의 승인·신고제도와 물가정책 등 여러 정책환경 속에서 형성돼 왔다.
사업자가 마음대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시장에서 낮은 ARPU를 사업자의 선택만으로 설명하고, 그 결과로 높아진 콘텐츠 사용료 부담까지 플랫폼이 감수해야 한다고 한다면 문제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콘텐츠사업자와 플랫폼 가운데 누가 더 가져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한다.
콘텐츠사업자도 어렵다. 케이블TV도 어렵다. IPTV 역시 성장 정체와 시장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한쪽의 몫을 늘리기 위해 다른 한쪽의 몫을 줄이는 방식만으로는 결국 같은 파이를 놓고 싸우는 일이 반복될 뿐이다.
필요한 것은 유료방송 생태계 전체의 파이를 어떻게 다시 키울 것인가에 대한 논의다.
정부가 오랫동안 억제해 온 방송요금 정책을 현실화하고, 낡은 유료방송 규제를 개선하며, 새로운 수익모델과 서비스가 등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콘텐츠 대가 문제만 떼어놓고 어느 한쪽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는 이 복잡한 문제를 풀기 어렵다.
콘텐츠가 무너지면 플랫폼도 무너진다는 말에 동의한다.그리고 한 문장을 덧붙이고 싶다. 플랫폼이 무너지면 콘텐츠가 시청자를 만날 길 하나도 함께 사라진다.
콘텐츠와 플랫폼은 서로의 비용이 아니라 서로의 시장이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어려운지를 겨루는 일이 아니다. 좋은 콘텐츠가 제대로 평가받으면서도 그것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플랫폼이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함께 만드는 일이다.
내쉬 협상모형을 활용한 이번 연구가 그 논의를 끝내는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콘텐츠와 플랫폼이 함께 지속가능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한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SO협의회장
△現 금강방송 대표이사
△現 익산상공회의소 부회장
△前 익산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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