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고용 '선순환'…"R&D 데스밸리 넘고 M&A 활성화 물꼬 터야"

[벤처 9조 투자, 일자리로 가려면]③ VC, 투자 회수 다변화 과제
핵심 R&D 인력 승계 M&A에 세제·고용유지 인센티브 필요

편집자주 ...올해 상반기 벤처투자액이 8조 8676억 원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지만, 스타트업 생태계의 고용은 기대만큼 늘지 않았다. 투자 유치기업은 채용을 확대했지만 투자에서 소외되거나 실증·매출·후속투자 확보에 실패한 기업은 감원과 영세화의 압박을 받고 있다. AI·딥테크 확산으로 ‘창업=고용’이라는 공식도 약해진 만큼, 창업기업 수와 투자금 규모만으로 정책 성과를 판단하기 어려운 시점이다. 뉴스1은 투자가 딥테크로 집중되는 시대의 고용 현실과 창업·성장·회수시장에 남은 과제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이소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당시 후보자)이 벤처기업협회를 방문해 송병준 벤처기업협회 회장을 만나고 있다.(벤처기업협회 제공)

(서울=뉴스1) 김민석 기자

정부의 평가 나침반은 '몇 개의 기업을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살아남은 기업이 얼마나 양질의 일자리를 지키고 있는가'로 옮겨가야 할 것입니다. 벤처 투자가 유동성 공급에 그치지 않고 청년이 일하고 싶은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 이어져야 합니다.(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

벤처 투자액이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인 8조 8676억 원까지 늘었지만, 스타트업 고용이 전반적으로 정체된 배경에는 민간 벤처캐피털(VC)의 투자 판단만으로 풀기 어려운 구조적 공백이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금을 받은 기업의 고용은 늘었지만, 시제품 개발 뒤 실증·매출·후속 투자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에서 멈춘 기업은 채용보다 감원과 사업 축소를 먼저 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시제품과 매출 사이 '죽음의 계곡'

28일 전문가들은 민간 VC에 특정 업종 투자나 채용 목표를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은 해법이 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VC는 높은 위험과 긴 회수기간을 감수하는 대신 성장성과 회수 가능성을 따져 기업을 선별하는 민간 모험자본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이나 시장성이 낮은 업종까지 같은 비중으로 투자하도록 요구하면 VC의 투자 판단과 포트폴리오 운용을 제약할 수 있다.

벤처 투자가 일자리로 이어지도록 하려면 민간자본이 감당하기 어려운 기술개발 이후의 성장 공백을 정부가 보완하는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기술기업의 가장 약한 고리는 R&D와 매출 사이에 있다. 시제품을 개발해도 실증 레퍼런스가 없으면 민간 고객은 구매를 주저하고, 매출이 없으면 후속 투자와 금융권 대출이 함께 막힌다. 결국 채용보다 구조조정이 앞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민형 벤처기업협회 혁신정책본부장은 "시제품을 만들어도 실증 레퍼런스가 없으면 고객이 구매를 주저하고 매출이 없으면 후속투자와 대출이 모두 막힌다"며 "인력 충원 대신 구조조정이 앞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간이 바로 데스밸리"라고 설명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중소기업정책연구실장은 "창업 초기 1~3년 기업에 현금성 지원을 일률적으로 주거나 창업 기업 수만 늘리는 예산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며 "죽음의 계곡을 통과해 매출과 고용을 동반하는 스케일업 단계 기업에 R&D와 금융 지원을 집중하는 구조적 선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로봇·스마트도시 등 신산업 창업 기업을 대상으로 공공기관이 직접 기술을 실증하고, 혁신제품 지정·시범구매·해외실증까지 연계하는 '정부 첫 실증·구매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기술개발 성과가 시장 진입과 초기 매출로 이어지도록 공공부문이 첫 고객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다.

노 실장은 "기술이 우수해도 데스밸리를 넘으려면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실증 성과가 필요하다"며 "실증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첫 구매로 이어지는 통로를 넓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1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코스닥시장 개설 30주년기념식에서 참석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김세완 자본시장연구원장, 송병준 벤처기업협회장, 오기형 코리아프리미엄 K-자본시장특위위원장,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동훈 코스닥협회장, 김학균 VC협회장, 황선오 금융감독원 부원장. (한국거래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026.7.1 ⓒ 뉴스1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기관 자금 안착 필요

모태펀드 등 정책 자금 중심의 벤처 투자 구조만으로는 성장 단계별 자금 수요를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기금·공제회 등 장기 기관투자자의 벤처펀드 출자를 유도하고, 일반 투자자가 비상장 혁신기업 투자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y)를 안착시켜야 한다는 요구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3월 BDC 제도를 시행했다. BDC는 비상장 벤처·혁신기업과 코넥스·코스닥 상장사, 투자 완료 벤처조합의 구주 등에 자산의 60% 이상을 투자하는 상장 공모펀드다. 일반 투자자도 코스닥 상장 BDC를 통해 비상장 혁신기업에 간접 투자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 본부장은 "현재 벤처투자는 모태펀드 등 정책 자금 의존도가 높아 규모의 한계가 뚜렷하다"며 "연기금·공제회 같은 장기 기관투자자의 출자를 유인하고, BDC를 통해 민간 자금이 비상장 기업에 안정적으로 들어오도록 세제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금조달 경로가 다변화돼야 데스밸리를 넘긴 기업들이 인력 감원 없이 후속 투자를 확보하며 스케일업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용석 중소벤처기업부 1차관이 서울시 마포구 스타트업벤처 캠퍼스 서울(SVC 서울)에서 열린 '벤처 투자 계약문화 발전 선포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중소벤처기업부 제공)
IPO 편중 회수 시장 한계…M&A 활성화 필수 과제

투자 이후 회수 경로를 넓히는 일도 고용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VC가 적기에 투자금을 회수해야 새 펀드를 결성하고 초기 기업에 다시 자금을 공급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국내 스타트업 회수 시장은 IPO 의존도가 높아 상장 시장 여건이 나빠지면 후속 투자까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본부장은 "IPO는 소수 기업만 도달할 수 있는 출구인 반면 M&A는 더 많은 기업과 투자자에게 열려 있는 회수 경로"라며 "국내에서는 세제와 인식 측면에서 여전히 위축돼 있다"고 진단했다.

세컨더리 펀드는 기존 투자자의 스타트업 지분이나 벤처조합 출자지분을 매입해 중간 회수 기회를 제공한다. 기존 투자자는 펀드 만기 전에도 유동성을 확보해 재투자에 나설 수 있고, 피투자기업은 IPO나 M&A 같은 완전한 회수를 서두르지 않고 지분 구조를 정리하며 성장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이 본부장은 "국내 세컨더리 시장은 출자 규모와 거래 사례 모두 초기 단계"라며 "모태펀드 등 정책 자금의 세컨더리 출자 비중을 높이면 회수 시장 유동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M&A가 단순한 투자금 회수에 그치지 않고 기술 인력 보호와 스케일업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피인수 기업의 핵심 R&D 인력은 스톡옵션 행사나 고용 불안 등으로 인수 뒤 이탈할 수 있어, 인수기업이 기술력 확보에 실패하는 ‘빈 껍데기 인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 실장은 "IPO 일변도의 회수 시장을 다변화하고 M&A를 활성화하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인수 과정에서 핵심 R&D 인력이 흩어지지 않도록 고용 유지·승계를 조건으로 세제 혜택이나 고용유지 인센티브를 연계하는 고용연계형 M&A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기업·중견기업이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을 인수해 자본·인프라를 제공하고, 스타트업 핵심 인력이 남아 글로벌 스케일업을 이룰 수 있는 출구전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도 "고용연계형 M&A에 세제 혜택과 고용유지 지원금을 결합하는 입법은 VC 자금 선순환과 기술 인재 보호라는 두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ideaed@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