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전가 아닌 위험 공유…대·中企 상생협력 체계 필요"

중기연, 대·중소기업 갈등 구조 분석…"위험 전가 아닌 위험 공유로 바뀌어야"
중기부도 동반성장·오픈이노베이션 확대…상생협력 생태계 구축 추진

사진은 20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모습. 2026.5.20 ⓒ 뉴스1 김영운 기자

(서울=뉴스1) 이재상 기자 =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갈등이 단순한 임금 차이를 넘어 위기 때마다 위험과 비용이 중소기업에 집중되는 구조가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2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실린 '대·중소기업 간 갈등의 구조적 원인과 동태적 확산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연구진은 지난 15년간 국내 대·중소기업 갈등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갈등의 핵심 원인을 '위험의 외주화(Risk Outsourcing)'로 진단했다.

"위험은 협력사로"…반복되는 대·중소기업 갈등

연구진은 대·중소기업 갈등을 제조 공급망 갈등과 유통·플랫폼 갈등으로 구분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원자재 가격 상승이나 경기 침체, 공급망 위기 등 외부 충격이 발생할 경우 원청기업이 부담해야 할 위험과 비용이 납품단가 인하, 거래조건 변경 등의 형태로 협력 중소기업에 전가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원자재 가격 급등, 코로나19 팬데믹 등 대외 충격이 발생할 때마다 납품단가와 거래조건을 둘러싼 갈등이 확대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연구는 특히 대·중소기업 갈등이 일회성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번 발생한 갈등이 쉽게 해소되지 않은 채 누적되면서 구조적 문제로 고착화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갈등의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제조업 중심의 원·하청 갈등이 주를 이뤘다면 플랫폼 경제 확산 이후에는 플랫폼 기업과 입점업체, 소상공인 간 갈등이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플랫폼 기업이 수수료 체계와 노출 알고리즘, 입점 조건 등을 사실상 결정하는 구조 속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협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러한 갈등이 단순한 기업 간 이해관계 충돌을 넘어 산업 생태계 전반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라고 진단했다.

특히 경제위기가 발생할수록 위험은 중소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높은 대기업은 충격을 흡수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결국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면 산업 생태계 전체의 혁신 역량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장과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세븐브로이-대한제분 상생협력기금 출연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4.16 ⓒ 뉴스1 신웅수 기자
"납품대금 연동제 등 위험 함께 나누는 상생협력 체계 구축 필요"

이에 따라 연구진은 기존의 규제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위험을 함께 나누는 상생협력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납품대금 연동제 정착과 공급망 위험 공동 부담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원자재 가격 급등과 같은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특정 기업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도록 위험을 분산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 분야에서는 입점업체 협상력 강화와 알고리즘 투명성 확보, 수수료 변경에 대한 사전 고지 및 협의 절차 강화 등이 과제로 제시됐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상생협력 정책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중소기업 정책 패러다임을 기존 '보호 중심'에서 '성장 중심'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히고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 생태계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대표적으로 납품대금 연동제 안착을 추진하는 한편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협력을 지원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이오,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신산업 분야에서 대기업의 인프라와 스타트업의 혁신 역량을 연결하는 협업 모델 구축에도 나서고 있다.

이병권 중소벤처기업부 제2차관이 10일 오후 서울 중구 대·중소협력재단에서 열린 '제2기 납품대금 연동 확산 지원본부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택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 부원장, 오충용 한국물가협회 본부장, 이면헌 대·중소기업·농업협력재단 본부장, 이병권 제2차관, 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전무이사, 김홍석 이노비즈협회 상무, 윤정희 한국경영기술지도사회 실장. (중소벤처기업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6.4.10 ⓒ 뉴스1

KB금융과의 상생협력기금 조성,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사업 확대 등도 대·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을 위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보호와 지원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이 함께 성장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대·중소기업 갈등을 단순히 규제와 제재만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그동안 정책이 불공정 거래를 막고 약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위험과 성과를 함께 나누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며 "중소기업이 안정적으로 성장해야 산업 생태계 전체의 경쟁력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보호 장치 없이 성장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보호에만 머물러서도 발전하기 어렵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곳은 협력 중소기업"이라며 "위험은 중소기업이 떠안고 성과는 대기업에 집중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산업 생태계의 혁신 역량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생협력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제 거래 현장에서 작동하는 제도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나프타 수급 불안이 이어지면서 건설 자재 단가 인상과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공사장의 모습. 2026.4.8 ⓒ 뉴스1 최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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