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로 경영권 방어한다고? 득보다 실이 많아요"
[자사주 쌓아둔 中企]⑪코스피 5000 특위 김남근 의원 인터뷰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 자사주 소각하면 기업가치 재평가"
- 이정후 기자
(서울=뉴스1) 이정후 기자
자사주를 경영권 보호에 이용하겠다는 기업 요구를 이명박 정부가 받아들였는데, 세계적으로 많이 쓰는 방식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배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쓰인다는 불신이 커져 주가 하락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회사가 취득한 자사주를 1년 내 소각하도록 의무화 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오기형 위원장이 대표발의하고 김남근 민생원내부대표 등 22명이 공동 발의자에 이름을 올렸다.
뉴스1은 법률로 자사주 소각을 강제할 만큼 기업의 자사주 관리가 허술한지 직접 기획취재했다. 그 결과 언론과 시장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한 중견·중소기업의 자사주 보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배주주의 사익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에 뉴스1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띄운 김남근 의원을 직접 만났다. 김 의원은 2011년 기업들의 자사주 취득이 가능하도록 제도가 바뀐 이후 지금까지 (자사주 취득 허용 제도는) 국내 자본시장에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정부는 경영권 방어라는 재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기업의 자사주 취득을 허용하고 처분에 있어서도 이사회에 재량권을 부여했는데, 오히려 지배주주의 지배력만 높아지고 주주 환원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자사주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중소 상장회사들에 대해서는 "소각 계획이 없는 기업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을 것"이라며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담긴 상법 개정안을 통해 상장 시장이 개편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의원은 의결권과 배당권이 없는 자사주를 국내 상장회사들이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게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배당이나 투자에 투입돼야 할 돈이 자사주에 묶여 사장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김 의원은 "자사주는 투자나 배당에 활용되지 않는 비효율적인 자본"이라며 "문제는 전체 주식의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 500개를 넘는다는 점이다. (기업들의) 과도한 자사주 보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자사주는 2011년 이전까지 원칙적으로 취득하는 게 불가능했다. 소각이나 합병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취득이 가능했고 이마저도 일정 기간 내에 처분해야 했다. 하지만 재계의 요구에 정부는 소각 의무를 폐지하고 자사주 취득을 원칙적으로 허용했다.
김 의원은 소각 의무 폐지 이후 우리나라 자본시장에 그동안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기업의 자사주 취득은 곧 소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주주들도 주주 환원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시장에서는 주가 상승으로 나타난다"면서 "반면 우리나라는 지배주주가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싼 가격으로 넘겨 부당하게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승계 등에 편법으로 활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자사주 보유에 대한 불신만 커졌다"고 했다.
이어 "생산적인 곳에 투자돼야 할 돈이 취득에 쓰이면서 우리 경제 전체적으로도, 또 주식 시장 차원에서도 실이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자사주를 남용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지적한 것이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할 경우 적대적 인수·합병(M&A) 세력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경영계의 우려에 대해서는 '의무 공개매수 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의무 공개매수 제도란 인수자가 회사의 주식을 일정 비율 이상 취득해 경영권을 확보하고자 할 때, 지배주주로부터 사들이는 주식 가격과 같은 가격으로 나머지 일반주주의 주식을 사게 만드는 제도다. 국내에선 지배주주의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더 비싸게 인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는 "적대적 M&A 세력이 회사의 지분 25% 이상을 확보하려고 할 때 의무 공개매수를 적용하면 예상치보다 2배 이상의 (지분 인수) 비용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경영권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의무 공개매수 제도는 여야가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로, 과거에는 도입을 반대하던 재계가 오히려 제도 마련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우려하는 경영계를 달래기 위한 방안이지만 김 의원은 기업 스스로 주주들로부터 신뢰를 확보하는 게 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소통을 강화해 주주들을 설득하는 일"이라며 "자사주 소각 의무 예외 사항인 임직원 스톡옵션 지급, 우리사주 지급 등에 자사주를 활용하면 그들이 경영권을 방어해 주지 않겠나. 지배주주가 회사를 혼자 가지려 하는 게 비정상"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 계획대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 통과되면 사실상 오너일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폐쇄적인 기업들이 주식 시장에서 정리될 것으로도 내다봤다.
김 의원은 "(법안 통과 시) 상장 회사로 남으려면 자사주를 소각해야 하는데 이를 원하지 않는 기업은 상장폐지를 선택해야 할 것"이라며 "승계를 위해 주가를 억누르고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 넘기는 기업은 퇴출하고 건실한 기업이 남도록 해야 주식 시장이 활성화된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을 향하는 기업과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기업을 투자자들이 구분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그것이 주식 시장, 더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이 발의한 3차 상법 개정안은 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하는 경우 취득일로부터 1년 내 소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법 시행 이전에 취득한 자사주에 대해서는 법 시행 후 6개월의 추가 유예 기간을 두기로 했다.
다만 △임직원 보상 △우리사주제도 시행 △신기술 도입 및 전략적 제휴 △재무구조 개선 등 일정 요건에 해당할 때는 '자기주식 보유·처분 계획'을 작성해 주주총회 승인을 받을 경우 보유를 허용하도록 예외를 뒀다.
이같은 승인 없이 자사주를 1년 내 소각하지 않으면 이사 개인에 대해 5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또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대해 의결권·배당권 등 모든 주주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했고 자사주를 질권의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도 뒀다.
합병·분할 과정에서도 회사 또는 피합병·분할 회사의 자사주에 대해 신주를 배정할 수 없도록 금지 규정을 신설했으며 자사주를 처분할 때는 원칙적으로 모든 주주에게 주식 수에 비례해 균등한 조건으로 처분하도록 했다.
leej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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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담긴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자사주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뉴스1>이 전수조사를 한 결과 국내 상장사 중 자사주 보유율이 높은 100대 기업의 84%가 중소·중견기업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자사주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한다. 유독 중소·중견기업이 자사주를 많이 보유하고 소각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승계나 경영권 강화를 위한 일종의 편법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1>은 상대적으로 언론과 사회의 감시에서 비껴나있는 중소·중견기업의 자사주 보유 현황과 지배구조를 전문가와 함께 직접 분석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