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패싱' 나와요"…강경 일변도 노동정책에 中企 '생존 위기'

[李대통령 100일]노란봉투법 입법에 중대재해법 강화까지
중소기업계 "속도 조절 필요"…전문가들 "균형있는 설계 필요"

경기도의 한 공장에서 근로자가 작업을 하는 모습 (뉴스1DB)

(서울=뉴스1) 이민주 기자

"노란봉투법 통과됐다고 하니까 노조가 (협상테이블에) 하청 말고 원청 나오라고 해요. 중소기업인 우리 경영진하고는 할 얘기가 없고, 원청과 직접 얘기하겠다는 거죠. 원청인 고객사도, 하청인 우리 회사도 이 법 아래에선 할 수 있는게 사실상 없습니다. 계약 취소되면 도산이죠."

이재명 정부가 출범 100일을 앞두고 있다. '노동 존중 사회'를 앞세운 새 정부는 노동정책에도 드라이브를 걸며 변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법의 선한 취지와 달리 '약한고리'인 중소기업계부터 부작용이 현실화하고 있다.

"다 죽겠다"는 업계의 호소에 뒤늦게 여당이 중소기업계를 만나 의견 청취에 나섰고 기업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 <자료사진>ⓒ News1 이광호 기자
하청 보호 아닌 '패싱'되는 노란봉투법…중대재해법도 '비상'

7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달 24일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원청의 사용자 책임을 명문화한 것을 핵심으로 한 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노란봉투법'을 통과시켰다.

노란봉투법은 노동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쟁점 법이다. 원청이 하청 근로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교섭 대상으로 확대한 부분이 법안의 핵심이다. 여기에 합법으로 인정하는 노동 쟁의 행위 대상을 기존 임금뿐만 아니라 정리해고, 구조조정처럼 경영상 결정도 쟁의행위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중대재해처벌법 벌금 강화 등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중대산업재해에 대해 집중 점검해왔는데 최근 산업현장에서 잇따른 근로자 사망사고가 나오면서 대통령과 정치권에서도 기업의 근로자 안전감독 책임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최근 징벌배상 범위를 넓히는 방식의 대응책 마련을 관계부처에 주문하기도 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한 중소기업인들이 손 피켓을 들고 있다. <자료사진>ⓒ News1 이재명 기자
中企 "헤쳐 나갈 길 안 보여"…전문가들 "균형 설계 필요"

중소기업계는 정부의 '노동 존중 사회' 구현이라는 방향성에는 공감하지만 업계 현실이나 준비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입법이나 규제가 쏟아지고 있어 '숨 고를 틈조차 없다'고 호소하고 있다.

노란봉투법과 관련해 업계는 하청 중소기업 노조가 원청 기업을 대상으로 노동 쟁의 활동을 펼칠 경우 원청이 해당 중소기업과의 거래 관계를 축소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2022년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의 사업장 불법 점거로 추가 주문이 끊기면서 중소협력 업체 7곳이 도산했다.

에너지업계에 종사하는 중소기업 대표 김 씨는 "노란봉투법은 겉으로는 대기업 문제 같아 보여도 실제 파장은 중소기업에 훨씬 크다"며 "새 정부가 친노조 성향이 강해 기업 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방향성은 맞다고 보여도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가스제조·공급을 하는 한 대표는 "주변에서 다 죽겠다고 한다. 전부 무너진다고 표현하더라. 요즘 기업하고 싶다는 사람이 없다"며 "젊으면 관두기라도 하겠는데 먹고 살려니 폐업을 할 수도 없어서 사면초가다. (노동정책 추진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한꺼번에 몰려오니 헤쳐 나갈 길이 안 보인다"고 했다.

이명로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업계가 중소기업계에 요청했던 주 52시간제 유연화 등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노랑봉투법 등이 통과되면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며 "미국 관세에 인건비 증가에 내수도 살아날 기미가 안 보이는데 규제만 강해진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노동정책 정비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쟁의권 보장은 필요하지만 남용되면 경제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경제에 있어서는 한쪽 편만을 들 수가 없다. (규제가) 경제에 어려움을 줄지 여부를 따져서 업계 목소리를 반영할 부분은 반영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균형 설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용연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노사정 및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대화를 통한 협의로 개선점을 찾고 미비점을 보완해야 한다"며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회적 대화를 거쳐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minju@news1.kr